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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아직 못 짓겠어요...오늘 하루만 봐주세욧 ㅠㅡㅜ 으헤헷 미리메리크리스마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전부 바보라고 생각했다. 도파민과 옥시토신 따위의 호르몬 분비를 논하기 전에,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붉은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볼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고 자꾸만 히죽대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줄곧 하기도.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변덕쟁이가 되어버렸다. 뭐, 꽤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만큼 바보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사랑이 슬며시 찾아왔을 때, 생각해 보고 말고 따윈 없이 와락 덤벼들었다. 내가 보았던 바보들만큼 바보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자연스레 입과 몸에서는 단향이 풍겼고 붉게 물들어갔다. 같은 향기를 풍겨내고 같은 색으로 물든 우리가 좋았다.
하지만 무작정 덤벼든 마음은 다치기 쉬운 마음인 것을 알지 못했다. 단단했던 마음은 어느샌가 물렁해져있었고, 달콤한 내음이 나던 겉은 속을 파보면 썩어 있었다. 운명에 맡겨버리고 마음껏 착각 속에 살아도 좋을 것 같았는데 상상만큼 현실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마음에서 수를 없애리라 작정했지만 주는 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섭섭함은 입안에서 맴돌았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자주 분란을 일으켰고, 기다리지 못해 많은 관계를 그르쳤다. 뱉고 싶었던 단어들이 마구 떠올라 토해버릴 뻔했지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비겁하다 여기고 그는 나를 성급하다 여겼다. 함께 봤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처음에는 그저 슬퍼서, 나중에는 우리의 이야기 같아서 슬펐다. 내게 그는 조제로부터 도망가는 츠네오 같았다. 그렇게 그를 다신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한참을 누워지냈다. 모든게 네 탓 같았고 동시에 내 탓 같았다. 매일 누군가에게 잘못을 돌리고 미워해야만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버려둔채 지저분하게 방치해두다, 미움으로 엉망이된 마음을 치워보기로 했다. 대충 벗어둔 옷처럼 너저분하게 감정들이 널려있었다. 한곳에는 끈적하게 덩어리진 감정이 모아져 있었다. 어떤 사랑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방안은 어지럽혀져있다. 발로 치우고 밟아댄 흔적들이 이제서야 눈에 보인다. 당연했던 미숙함을 되짚으며 못나 보이기만 했던 조각을 다시 주워본다. 여전히 어리고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진 못했어도 우연하게 사랑에 빠지고, 필연적으로 이별하게 되어도 허무해하지 않기로 한다. 대단한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은가. 초라했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가장 예쁜 시절의 기억이다. 섣부르게 사랑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사랑을 하겠다 나지막이 다짐해 본다.
그리고 다시 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고, 이동진 평론가의 글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사실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사랑 자체가 홀로 버텨내야 할 생의 고독을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에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하게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향해는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이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깨끗하게 묶은 조제의 뒷모습처럼, 결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기를. ”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 바빴던 그때의 너와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돌아갈 수 없겠지만, 단잠의 세상이 그곳으로 이끈다면 꼬옥 안아주고 싶다.
닿아있는 곳에서 최대한의 충만함을 느껴보기. 상처 난 마음에 연고를 살살 바르고, 달래가며 사랑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조심히 다루기. 두고 도망쳤다 여겼지만 너와 나의 모든 모습이 용서가 되길. 스스로를 보듬는 방법은 이제 조금은 알았으니, 또다시 용기 있게 사랑에 뛰어들 준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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