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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3

<저는 여기 있어요>

같이 사는 사람이 며칠째 끙끙댑니다. 평소처럼 노트북을 두드리지만 심상치 않습니다. 집중할 때만 떨던 다리를 내도록 발발 흔들어대서 어지럽습니다. 무릎을 쓰다듬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네요. 마감일쯤 매정해지는 건 익숙합니다. 그래도 기분은 살펴주려 해요. 함께 사는 책임이랄까요. 양손으로 머리를 싸맨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뭔진 몰라도 큰일인가 봅니다. 복잡할 때는 흉통을 울리면 안정감이 들어요. 웡, 소리를 냈더니 벌떡 일어나 양손으로 저를 방 밖으로 밀어냅니다. 닫힌 문 너머에 귀를 기울입니다. 다리 떠는 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저도 불안해졌습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가슴을 쫙 펴고 자세를 꼿꼿이 고쳐 앉습니다. 꼬리로 바닥을 천천히 훑으니 심장이 다시 천천히 뜁니다. 산책도 공놀이도 내일 하면 되니까, 저 사람은 내일도 저러고 방 안에 있을 테니까요. 바닥에 엎드려 눈을 붙입니다.
벌써 며칠이 지났을까요. 함께한 세월 동안 이렇게 데면데면 군 적은 처음입니다. 걱정이 되네요. 문을 긁었더니 벌컥 튀어나옵니다. 오늘은 심경에 변화가 있나 봐요. 창문을 죄다 열어젖히더니 노래를 크게 틉니다.

'나에게 사랑은...상처만을 주었지만...사랑은...웃는 법 또한 알게 했고….'

오랜만에 궁상스럽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반려인입니다. 그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못 봐주겠기도 합니다. 또 헤어진 걸까요. 반려인이 종일 텔레비전만 보던 때가 떠올라요. 화면 속 사람들은 노래한답시고 얼굴을 찌푸리며 목청을 보였습니다. 노래를 따라부르던 반려인이 훌쩍이길래 입과 눈 주변을 핥았습니다. 어떤 날은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 얼굴을 부비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반려인이 사춘기를 겪는 줄 알았습니다. 강아지들도 자라면서 한창 짖고 나부대거든요. 나중에야 슬퍼하는 중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네요.
흥얼거리는 반려인에게 어슬렁어슬렁 다가가 손등을 살짝 물었습니다. 반려인이 귀를 헝클이더니 푸념합니다. 오랜만에 원고 제안을 받았다네요.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원고료를 받으면 수제 간식을 사주거든요. 슬플 일이 아니라 다행스럽기도 하고요. 반려인이 내려간 눈꼬리를 하고 얼굴을 쓰다듬습니다. 사랑에 대해 써야 하는데, 모르겠다네요. 반려인이 모르겠다고 말한 때를 기억합니다. 산책하다 커다란 집 마당에 저 같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걸 본 날, 글쓰기 수업 사이트를 화면에 띄우고 서성대던 날, 반려인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습니다. 갖고 싶거나, 갖고 싶어서 두려워진 건가 싶었습니다.

저는 알아요. 사랑은 맛있는 걸 챙겨주고 같이 산책하는 거예요. 무엇을 하지 않고 바라보는 거기도 하고요. 힘들 때 괜히 쓰다듬는 거기도 합니다. 두려움도 생겨나지만, 사랑도 생겨나요. 저절로 하게 됩니다. 인간의 말로 쓰기는 간단하지 않나 봅니다. 아니면 인간의 사랑은 다른 걸까요? 저는 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거나 환경에 적응하지만, 필요할 때는 배우며 복종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동물은 다 그래요. 별일 아니죠. 인간은 가끔 필요를 사랑이라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것 같기도 해요. 반려인이 누군가를 만날 때, 반려인과 상대는 꼭 서로가 필요해 보였어요. 계속은 아니었지만요.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반려인은 어질러진 집에 자주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함께 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저는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았어요. 반려인이 누우면 옆에 눕고, 반려인이 팔을 뻗으면 따라 기지개를 켰습니다. 그때는 걱정할 줄도 몰랐습니다. 인간이 어떤 패턴으로 지내는지 몰랐으니까요. 반려인이 사람을 데려오고, 그 사람이 움직이는 걸 보고서야 우리가 얼마나 누워지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사는 집에 자주 들러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 두 사람이 테이블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네 개의 발을 보며 제 그릇을 비웠어요. 셋이 소파에 앉기는 비좁아 바닥에 앉기도 하고, 셋이 산책하다가 달리기 시합을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지낼 줄만 알았습니다. 그 사람이 한참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려인은 조금 침울해 보였지만, 예전과 다르게 집을 치우고, 저와 산책하고, 밥을 차려 먹었습니다. 반려인이 잠시 외출한 날, 오랜만에 문밖에서 그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반가워서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제 귀와 정수리에 얼굴을 한창 부비더니 자기 물건을 챙겼습니다. 머리카락이 털에 닿던 느낌과 나무 냄새가 아직 기억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인형을 입에 물려주고는 제 귀에 속살거렸습니다.
“너랑 못 봐서 아쉽네.”

그날 이후 반려인은 가끔 울고, 취하며, 사춘기처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더니 말이 많아졌습니다. 저한테 자꾸 변명했습니다. 들을 사람은 여기 없는데,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반려인은 쓰고 있었습니다. 자기 말에 동조하지 않는 걸 알게 된 걸까요. 노트에 끄적이다가, 노트북으로 타다닥 소리를 내다가, 어느 때는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하고, 잘 못 자는 날도 생겼습니다. 반려인은 책상에 고꾸라질 듯 머리를 파묻고 무언가를 썼습니다. 잘 길든 패턴으로 끼니와 산책을 거르지 않고, 제 앞에서 조잘거리는 반려인이 귀여웠습니다.
앞으로도 반려인이 힘들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힘들어야죠. 저도 ‘기다려’를 알아듣고 인내하는 데까지 얼마나 큰 노력을 들였는데요. 다만 금방 알아차렸으면 합니다. 훌훌 털어냈으면 합니다. 사회성도 좀 떨어지는 것 같고, 어디서 사랑받는 것 같지도 않지만, 하나뿐인 내 반려인입니다. 저러고 있잖아요? 금방 그럴싸한 걸 써내고 간식을 사 들고 올 거예요. 그때마다 저는 여기 있을 거예요.

(14.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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