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퇴고3
<죽은 고백은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너에게 편지를 써.
이건 너를 쏟아낸 시이고
아무도 보지 않게 버려질 글이야.
꽤 오래전 너를 발견했어.
너는 그날을 잘못된 처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말이야.
너에게는 발소리가 나지 않았어.
그 발이 꼭 시린 물속에서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지.
문득 내가 알지 못하는 너의 수많은 발자국을 떠올렸고 그때부터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어.
먹물처럼 새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만큼이나 솔직한 말들, 두꺼운 주머니와 모자.
처음에는 너와 관련된 것들이 잔상으로 남았어.
나중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네가 되어서 생각을 멈춰야 했지.
종종 너를 기다렸어.
향을 피우거나 식탁을 닦거나 이불을 정리하면서 말이야.
그때의 침묵은 새벽을 덮을 만큼 고요했어.
어떤 때에는 까닭 모를 마음으로 가장 큰 잔을 골라 네 몫의 커피를 따르곤 했어.
그거 아니. 너를 안으면 네가 싣고 온 바람 냄새가 났고 거기에는 늘 계산 없는 마음이 안개처럼 떠다녔다는 거.
너와 나는 각자가 이해한 세상을 꽤 좋아했던 것 같아.
그런 것들을 나눌 때면 마치 부드러운 실로 시간을 묶어두는 기분이 들곤 했지.
흔적 같은 날들이 쌓일수록 그게 전부인 것처럼 진동하기도 했어.
너와 나는 어떤 것도 어떤 날도 될 수 있었어.
늘어진 비닐이 될 때도,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가 될 때도, 불에 덴 꽃이 될 때도 있었어.
별을 얼굴에 쏟거나, 우물에 포도주를 모조리 부어버린 적도 있었지.
만개한 나팔꽃을 가득 꺾어온 날도 있었고.
그렇게 설명하지 못할 마음이 늘어갔어.
정의하지 않은 관계는 잃을 것이 없고, 때때로 간절하다고 생각했어.
같은 계절이 지나고 또 지나 처음이 되었을 때쯤 말이야.
나는 여전히 너를 동력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
너에게서 파생된 것이거나 결과물을 엮으면 너와 닮아 있거나,
신기하게도 그런 조각들이 늘어갔어.
나란히 누워있을 때면 항상 네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봤거든.
감은 네 눈가에 달무리가 지는 까닭에,
나는 고개를 돌리는 법이 없었어.
느슨하게 내내 감상했지.
나는 네가 되기도 했고, 네가 내가 되기도 했어.
우리인 적 없는 너와 내가 말이야.
네 숲에 가는 꿈을 자주 꿨어.
나는 맨발로 달리는 사람이었지.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초록을 쥐고서 너를 부르면 숲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던 소실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어떤 환청이 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혹시'가 아니라 '아마도' 그럴 거라고, 달리면서 생각했지.
그렇게 천천히 손가락 마디를 짚다가.
먼지 위로 지문이 쌓이다가.
어느 날 말이야.
진짜 그곳에 도달했다고 착각해 버린 거야,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해서 미안해.
벅차고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어.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중 하나는 너도 마주한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물었고
네가 대답했지.
"발이 시리지는 않아?"
"아무도 못 믿겠어."
"선물은 왜 안 들고 가?"
"기억이 잘 안 나더라."
"너와 내가 필요를 논할 수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내가 하지 못하는 말을 알고 있니?"
"왜 그러는 거야."
"네 생활에 여전히 내 자리는 없니?"
"가끔 이해할 수가 없어.“
"결국 나는 아닌 거지?"
"신경 쓰이게 하지 말아줘."
"시간이 지나도 그렇겠지?"
"응."
다짐하고 선언하는 심판 앞에서,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털어놓거나 해명했어.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어째서 너는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만 나를 바라볼까,
네가 알지 못하는 것과 모르는 체하는 것의 간극을 설명할 수는 없을까,
수많은 주인공이 너라는 걸 알고 있을까,
전하지 못하는 독백이 아슬아슬하게 쌓여갔어.
이제는 알아.
네 숲은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 곳이지.
수많은 밤과 새벽 사이는 주인 없는 시간이었던 거지.
내가 기다리던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라 네가 여기로 오던 너의 시간이기도 하지.
너는 나무를 조각하지 않고 매만지는 사람이지.
드디어
너에 대한 오독을 멈춘 거야 나는.
그동안 순서 없이 내버려뒀던 마음들이야.
습하고 질척거리고 덩어리진 것들을 모았어.
붙어있던 이끼까지 모두 긁어냈어.
출처 잃은 것들은 죄가 없다고 말하면 네가 이해해 줄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잖아.
나는 도망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이제는 말이야.
의미로 먹고사는 삶에서 네가 사라지는 상상을 해.
그건 꿈이 아니라 연습이고.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종이를 불면 남는 건 결국 안부 같은 이야기들뿐일 거야.
부디 닿지 않기를 바라며 인사를 남겨.
내가 동경한 그 숲에서 오래 머물렀으면 해.
피지 않는 백합처럼 언제나 너다웠으면 해.
너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이 네가 되어서 비로소 자유로워졌으면 해.
진심이야.
죽은 고백은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죽은 고백은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죽은 고백은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야.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