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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얼마 전 2025년 유행할 트렌드라며 신조어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중에서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인 '아보하'란 키워드가 유독 눈에 밟혔다. "정말 평범한 하루, 무슨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는, 그런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삶의 태도"라고 한다. 자기 분수에 만족하고 살자는 '안분지족'의 요즘 말인 셈이다. 젊은 세대의 '행복 피로증', 과시욕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경향이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서울대 연구팀은 설명했다.

기시감이 든다. 이런 게 바로 헤겔이 말한 정반합 아닐까. 떠올려보면 '행복'이란 것은 주기적으로 수축과 팽창을 거듭했다. 한때 보란 듯 긁어대고 과시하는 "씨발소비"가 있었다면, 그 이후엔 "소확행"이, 이제는 "아보하"가 자리를 꿰찼다. 물론 이 '트렌드'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물의 독처럼 미디어에 한번 풀리기 시작하면 상업 요소 전반을 갉아먹기 시작할 테고, 이는 다시 내 무의식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새 업데이트 버전이 나오기 전까지 내 뇌가 "행복"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아보하"부터 떠올리게 될 거란 얘기다.

이런 행복론(?)들은 몰골은 달라도 대체로 비슷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 핵심은 가치관을 바꾸라는 것이다. 세상 자상한 얼굴로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아직 모르겠니?" 부드럽게 꾸짖는다. 원효대사가 운동 직후 게토레이 마시듯 해골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던 것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힘든 일상에서도, 사소한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보하"도 비슷한 얘기다. 행복 그거, 멀리서 찾지 말고 별 일 없는 보통의 하루, 그 자체에 감사할 줄 알아라는 뜻이고, 그 이면엔 그렇게만 하면 당신은 매일이 행복할 텐데 왜 거기에 만족 못하느냐는 따끔한 가르침이 담겨있다. 불교 용어 같아서 그런지 어쩐지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것,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옳다. 이제는 방법마저 간편하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이런 류의 조언들을 들을 때면 어쩐지 배알이 꼴리고 몸이 뒤틀린다. 불행의 이유를 모조리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다. "그거 알아? 네가 불행한 건 네가 그렇게 마음을 바꿔 먹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제부터 남 탓하지 말고 자기 탓 하자. 알겠지, 유노?" 물질과 성공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일상에서 소소하고 작은 행복(심지어 아무 일 없는 하루마저도..!)을 찾아 안간힘을 다해 전력으로 만족하란 얘기들은, 어쩐지 사탄이 어쩌구 중얼거리는 길거리 전도사의 주술 같아서 거부감을 일으킨다.

사실 말이 쉽지, 인간이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속세 인연을 모조리 끊고 산에 들어가 도 닦는 스님들에게도 욕심 버리기가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괴롭히는 화두라고 한다. 무수한 자극에 시시각각 노출되는 현대인들이 이런 마음가짐을 하루 아침에 갖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 석가모니마저 보리수 밑에 앉아 6년 넘게 수행한 끝에 비로소 욕심을 끊어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 하물며. 그런고로 이런 행복론의 유행은 필연적으로 '나는 왜 그럴까...' 하는 자괴감의 범람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대불행의 시대가 머지않은 셈이다.

'행복론'은 구조의 부조리를 은폐하고 불행의 책임을 은연중(혹은 대놓고) 개인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닮아있다. 불평등을 내재화하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무기력하고 자조적인 개인을 찍어낸다. 나도 한때 소확행을 추구한 적이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과 사람에 너무 지쳐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자포자기해버렸을 때였다. 당연하게도 마음을 한순간에 바꾸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리 행복하지도 않았다.

(9.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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