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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3

별도그마 (광적인 믿음)

나는 배우 강동원을 20년째 덕질 중이다. 누군가 _강동원 좋아해요? 라고 물으면 _사랑하는데요! 라고 서슴없이 답한다. 동원 씨가 24살 때 처음 그 용안을 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키도 덩치도 엄청 크고,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잘생긴 얼굴은 당연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겨 나오는데, 그것이 무척이나 임팩트 있다. 강동원 팬들 사이에서는 실물을 보면 절대 떠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배우가 활동하지 않으면 다들 음지에서 조용히 있다가, 1년에 한 번 영화가 개봉하면 갑자기 다 나타난다. 그리고 서로 나무란다. 저 여자 아직도 있네!!

내가 살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활동은 무인(무대인사)이다. 무인을 보려면 당연히 극장표를 구매해야 하는데, 그게 아이돌 티켓팅 수준이다. 당시 놀고먹는 자는 나뿐이라 내가 티켓팅 담당이었다. 왜냐하면 2주 동안 극장 홈페이지를 열어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CGV, 메가박스, 한일극장, 아카데미, 만경관—이 모든 극장을 다 열어두고 수시로 새로고침을 해야 한다. 표는 항상 제각각으로 언제 풀릴지 알 수가 없는 데다가, 열리자마자 매진이다.
표가 풀리면 전국에서 서로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자 쟁탈전이 벌어진다. 같은 좌석을 동시다발로 클릭하다 보면 한일극장(현 CGV 한일) 같은 지역 극장은 서버가 먹통이 된다. 모두가 클릭하고 있을 때, 나는 클릭을 멈추고 조용히 택시를 타고 직접 창구로 가서 앞자리를 산다.
나는 내가 초집중하는 것에는 약간의 신기가 발동한다. 한 번은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메가박스 좌석을 보았다. 새벽에 극장 관계자가 자기들 표를 몇 장 구매하려고 잠시 열어둔 듯 오픈되어 있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내가 일어나서 앞자리를 한 줄 쫙 다 사버린 거다. 내가 사자마자 창은 바로 닫혔다. 제일 친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언니야, 그 신기로 로또를 사라.

우리는 왜 별을 쫓아가는 것일까? 왜 실제로 연애를 하는 것만큼의 도파민이 나오는 것일까?
처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도파민이 나와 사랑에 흠뻑 취하게 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도 같이 나와 긴장감을 유발한다. 여기에 옥시토신과 노르에피네프린까지 분비되면 강렬한 감정적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별을 사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인가? 실제 연애와 덕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일단 그 사랑의 시작을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거부당할까 머뭇거리지 않아도 된다. 시작과 끝은 우리의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 내가 시작하고 내가 끝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자제력을 상실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면 피드백도 온다. 마음을 살짝만 비우면 피드백 없이도 원하는 만큼의 충족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는 것이 실제로는 어렵다. 별들에게서 사랑을 받으려고 마음먹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공허함이 남는다. 일명 현타가 온다고 하지.
현타가 오지 않는 오래된 덕질을 하려면 돈을 내가 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써야만 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부자다. 돈을 들여서 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허무함이 남는다.

예전에 성덕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성덕이라 함은 성공한 덕후를 말하는 것인데, 제목과는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오빠가 범죄자가 된 것을 다큐로 만들었다. 망덕이다. 그 영상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사람이 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다 보면 세세한 부분과 미묘한 변화까지 알게 된다. 손의 일부분만 보고도 내 스타를 알아보게 된다. 나는 가끔 우리의 DNA 속에는 관음증이 디폴트로 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평소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덕질의 행위들이 일종의 비밀스런 병증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에서 별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은 실제로 크다. 나는 강동원이 이한열 열사라는 것이 어린 학생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누군지도 모를 수 있는 인물을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대신 보여줌으로써 거부감 없이, 파급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 자신의 파급력을 알기에 절제하는 삶을 사는 별들이 좋다.

늙어서 웬 덕질이냐 싶겠지만, 나도 내가 이럴 줄 미처 몰랐다.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순수하게 한 인간을 사랑하고 응원한다. 그리고 닮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항상 사소한 부분까지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조리한 일에는 따르지 않는다. 해서 욕을 먹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무엇보다도 바르고, 깨끗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나는 존경한다. 나는 그런 그를 응원함과 동시에 나의 삶도 응원한다. 오랫동안 그를 보려면 나 자신이 잘 살아야 한다. 내가 잘 살아야 그를 오래 볼 수 있다. 토마토, 기러기, 우영우와 같은 논리다.
나는 가끔 아직도 동원 씨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이 좋다.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보낸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일 테다. 응원봉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더 이상 빠순이라는 말로 우리의 이러한 사랑을 폄하하지 않는 세상이 오는 것 같다. 덕질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한다는 건 말 그대로 순수한 마음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그 열정적으로 순수한 마음을 한번 가져보시라 권해본다. 상상 이상으로 삶이 즐거워진다.

(13.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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