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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욕망은 삭제되지 않는 휴지통이다. 예시를 하나 들까. 게임 좋아하는 김멍뭉야옹씨는 새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 고민한다. 이렇게 고민할 바에야 그냥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덜컥 산다. 플레이스테이션이 도착하면 욕망은 깔끔하게 삭제될 것으로 예측한다. 김멍뭉야옹씨는 욕망이 없던 이전 상태로 돌아가서 편안해진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때마다 인식은 못하더라도 욕망의 구조는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욕망은 깔끔하게 삭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매하고 싶었던 플레이스테이션을 산다고 해도 플레이스테이션을 구입함으로써 연계되는 욕망이 생겨난다. 하루에 두 시간은 해야 한다. 젤다의 전설을 깨야 한다. 새로 나온 신작 게임도 사야 한다. 이 모든 욕망은 시간과 돈, 혹은 본인의 컨디션 문제로 다 채워지지 않는다. 욕망의 본체가 삭제할 수 있는 파일이 아니라 휴지통 그 자체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휴지통을 비워줄 수는 있어도, 삭제가 안 된다. 그래서 늘 욕망은 허기지다. 특히, 김멍뭉야옹씨처럼 휴지통 비우기를 주기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다 깨달은 사람처럼 주저리주저리 적긴 했으나 막상 내 욕망은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난 플레이스테이션은 관심 없다. 옷 사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예전에는 옷을 많이 사고 싶었다.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색깔별로 골라 사는 데 재미를 느꼈다. 빈 옷장이 새 옷으로 채워질 때마다 짜릿했다. 옷이랑 살고 있는데도 옷이랑 살고 싶었다. 더군다나 옷을 입는 것보다 사는 행위 자체에 재미를 더 느껴서 그런지 명확한 스타일 없이 그저 예뻐 보이면 사들였다. 번 돈에서 꽤 많은 돈을 옷 사는 데 썼다.
그러다 무슨 옷을 입어도 만족이 안 되는 시기가 찾아왔다. 흔히 말하는 옷태기였다. 보통 이때쯤 되면 이제 옷에 돈 그만 써야겠다고 관두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옷에 대한 욕망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도 그래보려고 했는데, 틈만 나면 패션 유튜버 영상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이 욕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음을 깨달았다. 계속 옷을 욕망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옷장을 채운 옷을 비워야 했다. 안 입는 옷을 정리하고 팔아야 했다. 금전적으로 억제하지 않고 옷을 사는 내 모습도 문제였다. 뼈아프지만 살이 뜯기고 있었으니, 교정이 필요했다. 일 년에 백이십만 원. 한 달에 평균적으로 십만 원씩만 옷에 쓰자. 작년에는 성공했다. 28,103원 남겼다. 올해도 성공하고 싶은데, 72,955원이 남아 있어서 작년에 남긴 28,103원을 합쳐버리고 싶다. 꼼수 같아서 최후의최후의 보루로 둔다.
옷 사는 욕망을 다루는 건 힘든 일이다. 쉽사리 자리 잡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이 욕망을 다루는데 묘한 재미를 느낀다. 나는 내 욕망을 다루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옷을 사야겠다는 욕망이라는 휴지통을 꾸미고 배불리 먹인다. 그러나 쉽게 비워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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