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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태양의 각문>
- 김남조
가을을 감고 우리 산 속에 있었습니다.
하늘이 기폭처럼 펄럭이고 태양은 익은 석류처럼 파열했습니다. 당신은 낙엽을 깔고 향수를 처음 안 소년처럼 구름을 바라보고 나는 당신과 가을을 느끼기에 한때 죄를 잊었습니다.
마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벗었음을 알던 옛날 에덴의 경이 같은 것이 분수처럼 가슴에 뿜어 오르고
만산 피 같은 홍엽,
만산 불 같은 홍엽,
아니 아니 만산 그리움 같은 그리움 같은 홍엽에서 모든 사랑의 전설들이 검붉은 포도주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청량한 과즙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바람이 스쳐갈 뿐, 사방 광막한 하루의 천지가 다만 가을과 당신만으로 가득 차고 나는 차라리 열병 앓는 소녀였음이여
사랑한다는 건 참말 사랑한다는건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을 숨막히도록 숨막히도록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 아아 응혈처럼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고......
나는 비수처럼 한 이름을 던져 저기 피 흐르게 태양에 꽂았으니 그것은 이 커다란 우주 속에서 내가 사랑한 그 으뜸의 이름이었습니다.
요즘 좋아하는 시를 필사해 봅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분석할 능력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움 같은 그리움 같은' 이 구절이 두 번 반복될 때, 정말 누군가 그리워졌습니다.
조건없이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지금 제게 그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이름은, 아는 이름에서 모르는 이름이 되었거든요.
한 단어씩 곱씹으면서 누군가 떠올리는 것도 낭만인 것 같아서... 그냥 속으로 이름을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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