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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나는 박준 시인의 글을 좋아한다.
처음 시를 접한 건 다른 시인이 시집이었지만, 마음에 닿았던 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였다.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첫 장을 펼치고 마음이 울컥했었던 것은
며칠은 그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주체 못 해 책을 펼쳐보지 못했다.
첫 줄만 읽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아도 잘 우는 편은 아니여서 이 생경한 감정이 어색하고 두려웠다.
슬픔이라는 늪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펼쳐본 이후에는 넘어가는 그 한 장이 아까웠고, 그래서 더 천천히 곱씹어 마음으로 소화시켰다.
그리고 다음으로 찾은 것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사실 이 산문집이 먼저 세상에 나왔지만 나는 시즌 2 같은 마음으로 접했다.
너무 재미있는 것의 시즌 2 는 실망하기 마련이다. 기대치를 충족하기란 어려우니까.
나에게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가 슬픔의 호수 속에서 유영하는 글 이었다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는 마음이 저린(마음이 저리다는 표현이 너무 딱 맞는 느낌이다) 샛물을 맨발로 물장구를 치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내가 필사하고 싶은글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여행과 생활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
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 시를 읽고 속절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에게는 절절한 사랑이 짙게 묻어 있는 글이어서.
따듯한 얼음을 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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