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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
사람들 상의 대화가 갑자기 끊기고 낯선 정적이 흐르는 순간을 독일어나 불어에서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이 표현을 안규철 작가의 『사물의 뒷모습』에서 처음 보았다.
작가는 이 책을, 자신의 마음 속에서 천사가 지나간 시간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물건들이 제자리에 없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것들은 잠시만 눈을 떼면 엉뚱한 곳에 가 있거나 아예 사라져버리곤 했다. (...)
그러니 이제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없어지면 없는 대로 살고, 자꾸 달아나는 것들을 달아나도록 놔두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_ 물건들

어떤 가지는 살리고 어떤 가지는 버릴지를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이 나무의 일이다. (...)
11월, 지난 여름 뜨거운 햇볕과 비바람 속에서 함께 부대끼던 잎사귀들을 보내는 시간이다. 마당의 낙업을 쓸며 이처럼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나무에게 배우는 시간이다.
_ 나무에게 배워야 할 것

노트에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면, 이렇게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엇갈리며 마음이 편치 않다. 쓰고 그리는 일은 나에게서도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날 것이고, 그 끝은 당연히 이런 날들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 (...)
부재와 헛된 기다림이 바로 오늘 내가 맞이해야 하는 최초의 손님이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_ 이명

작가는 자신의 마음 속 생각들을 무미건조하게 써 내려간다.
책을 읽다 보면 공감하게 되고, 깨달음도 얻게 된다.

나는 어휘력이 부족하다.
내가 느끼는 생각과 느낌을 조리 있게 말하려면 한참이 걸린다.
가끔은 한참 생각해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그렇게 좁아져 있던 내 어휘력과 시야를 넓혀 준 책이 이 책이었다.
늘 수수께끼였던 마음 속의 난제를 풀어준 책이다.

난제를 푼 글이라니,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문장일까 싶지만
작가의 문체는 정말 간결하고 쉽게 읽힌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 무미건조함이.

요즘엔 또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
오늘 모각글의 주제를 보며, 노트에 필사를 해둘걸 후회했다.
지난 며칠 간 나름 정성을 기울였다 생각한 글을 제출한 후, 두 작가의 글을 보자마자 이마를 탁 쳤다.

하나는 사실 자신은 코딱지를 잘 판다고 고백했던 작가와
다른 하나는 성욕이란 자신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 작가였다.

두 작가의 글은 모두 쉽게 읽히지만, 하고픈 이야기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기억 속에 각인되는 여운이 있었다.
기교 없이도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전하며
담담하게, 무미건조하게.

난 그런 문장들이, 작가들이 좋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나를 대신해 마음 속 난제를 풀어주는 글들,
나의 어휘력과 시야를 또 다시 넓혀주는 글과 작가가 좋다.

(7.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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