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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애인이 죽고 시체 정도는 먹어줘야 사랑 아닌가요???

<구의 증명>
내겐 부활과 동정녀의 잉태가 필요하다. 윤리나 과학이 끼어들 여지없는 기적이 필요하다. 천 년 후가 필요하다. 종말 혹은 영생이 필요하다. 미친 자아가 필요하다. 인간이 아닌 상태라도 좋으니, 당신이 필요하다.
믿음이 필요하다. (11p)

네가 올 줄 알았다.
오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분명 너를 기다렸지 만, 내가 죽기 전에 오길 바라는지, 죽은 후에 오길 바라는지•••••• 혼란스러웠다. (중략)
너를 보고 싶었다.
낡고 깨진 공중전화부스가 아니라, 닳고 더러 운 보도 블록 틈새에 핀 잡초가 아니라, 부옇고 붉은 밤하늘이나 머나먼 십자가가 아니라, 너를 바라보다 죽고 싶었다.
너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너여야 했다. (16p)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165p)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186p)

최진영 작가는 미쳤다. (긍정적인 의미)
구의 증명을 몇년 전에 사서 10번 읽었는데 진짜 10번 내내 좋았다...
난 저런 사랑을 하긴 싫다. 그치만 남이 써주는 개망한 처절한 사랑은 왜 이렇게 좋을까?
구의 증명 읽고 나면 엥간한 사랑은 이제 사랑으로도 안 보인다.
애인이 죽고 시체 정도는 먹어줘야 사랑 같은데 어쩌란 말인가. 최진영 작가님이 구의 증명 같은 거 또 써주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음울하고 눅눅한 분위기와 문장을 너무... 좋아한다...
모든 문장이 술술 읽히고, 극 중 시점과 화자가 널뛰듯 전환되는데 이렇게 가독성 좋을 수가 없다. 그리고 최진영 작가님의 문장은 진짜 미.쳤.다. ㄹㅇ 한 페이지에 하나씩 명대사가 나오는데 내 구의 증명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덱스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친구가 그럴거면 걍 최진영을 사랑한다고 말하라길래, 말해본다. 최진영 작가님 최고ㅠ

(5.2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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