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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루다

한 사람만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정수리 조금 뒤쪽이던가. 새치 한 가닥이 생겼다. 유난스레 하얀 새치였다. 머리카락 속에 숨어 10센치고 20센치고 자랐지만, 뒤지고 뒤져도 못 찾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이따금씩 미용실에서 발각되어 잔디처럼 짧게 잘리곤 했다.

"나 여기 새치가 한 가닥 있어."

나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맡겼다. 머리카락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오갔다. 얼결에 쓰다듬을 받으면서 새치 같은 건 못 찾아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찾았다! 그는 하얀 새치를 뽑아 자랑하며 말했다. 그리곤 머리 밑 한 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꼬옥 눌러주었다. 새치가 여기에 있으니 기억해 두라는 뜻이었다. 물론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다. 뒤통수에 눈이 달리진 않았으니까.

이후로 새치가 손가락 한 마디보다 더 길게 자라는 일은 없었다. 그의 손에 의해, 새치는 주기적으로 가닥가닥 뽑혀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내 뒤를 봐주는 사람이었다.

그와 멀어졌다.

새치는 나와 함께 지냈다. 대충 정수리 부근 가마 주변을 만지작거렸다. 머리카락을 앞으로 쏟아 뒤적거려도. 거울 두 개를 마주 놓고 뒷머리를 뒤적거려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새치가 보일까봐 신경이 쓰였다. 머리를 묶을 때면 괜히 정수리를 거울에 비춰보곤 했다.

"난 꼭 여기만 새치가 한 가닥 나더라."

새치는 계속 자라고 있었지만 나는 이 말을 하기까지 꽤나 뜸을 들였다. 감춰오던 새치를 들춰내 보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손에 쉽사리 머리를 맡기기가 어려웠다.

찾았다! 새치는 검지 손가락보다도 더 길었다. 한 동안 솟아나오지 못했는지 끝머리가 가늘고 구불했다. 초면인 사람에게 뽑힌 새치는 어째 기운이 없어보였다. 더 길게 자라나느라 힘들었나보다.

하하. 가슴 속에서 헛웃음이 올라왔다. 이게 뭐라고. 앞으로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질 텐데. 머리가 전부 새고 나면 골라서 뽑으려 해도 구분하지 못할 텐데.

이런 생각에 헛헛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반백이 되어도 백발이 되어서도 습관처럼 정수리를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두려움이 눈앞을 휘감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지.'

길게 자란 새치. 그 새치가 놓인 다른 손바닥이 그제야 보였다. 머리 밑에 절로 손이 갔다. 손이 닿이는 곳에 분명 새치는 없을 것이다.
손을 뻗어 새치를 집어들었다. 새치가 손가락에 닿는 것보다 손끝에 닿는 손바닥의 감촉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어쨌든 새치는 죽었고 다른 사람이 내 앞에 있다.

그 순간 참으로 이기적이게도,
'그래도 한동안은 괜찮겠지' 하고 일단 안심하고 말았다.

(6.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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