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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흰색 옷을 입지 않나요?’

나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은 마지막 순간의 색을 입고 가게 된다고, 내 시체에 붉은색 액체가 너무 많이 튀었다고 한다. 나는 조용히 드레스의 어깨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저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그는 말했다. 다 절차가 있다고, 너는 누군가를 비워내지 못했다고. 그 누군가를 보내준다면, 너는 이제 나를 따라서 가면 된다고.

‘이름을 말해 주세요.’

‘네가 찾아. 단서는 사랑, 이 하나면 된다. 네가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도착한 곳에는 투박한 베이지색 책상, 그리고 의자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누가 봐도 두 명의 만남을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왜 여기 있죠?’

주위에 익숙한 얼굴들이 둘러싼다. 학교 친구, 이웃, 부모님, 친척, 내 남동생, 그리고 이름만 모르는 이들까지. 아직 죽지 않은 동생이 왜 여기서, 가만히 책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관객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실제는 아니다. 여기 없는 이가, 네가 찾아야 할 사람이야.’
‘그도 실제가 아닌가요.’
‘글쎄.’

그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눈을 감으라 명령했다. 조용히 눈을 감으며 ‘사랑’에 걸맞은 이를 찾으라고, 그렇다면 그가 네 앞에 올 것이라 했다.

‘사랑, 사랑, 사랑…‘

수많은 형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 중엔 나의 인자하신 고모도,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친구, 서로 커밍아웃했던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내게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아니잖아.’

눈두덩이를 끌어내렸다. 다시 한 번,

‘사랑, 사랑, 사랑…’

남동생이 내 앞에 서 있다. 마지막으로 본 모습보다 조금, 앳된 것 같은데 말이다. 동생이 눈빛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릴 리 없는데 해석했다.

‘피하지 마, 누나.’

동생은 씩- 웃더니 사라진다. 처음이다. 눈을 감기 전 사라진 게 말이다. 한 번의 사랑을 더 외치고, 또 다른 이가 나왔다. 그녀도 아니었다. 나는 결국, 8년 넘게 부르지 않았던 이름을 사랑 뒤에 넣는다.

‘사랑하는 ____’

발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말이다. 기분탓일까. 불안한 마음에 주저하며 눈을 뜬다. 내 앞에는-

당신이 있었다. 나는 마른 웃음을 지었다.

‘안녕’

당신은 버릇이던 어깻짓을 보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잠시동안, 말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깜빡이지 않으려 애쓴 눈망울은, 당신을 더욱 반짝거리게 해줬다.

우리는 말없이 슬픔과 사랑을 가졌다. 나는 책상 위로, 손을 뻗었다. 나머지 반절을 당신이 와주길 바라며, 손을 뻗었다. 당신은 웃었다. 당신은 기꺼이, 자신의 몸을 당겨 내 손을 잡아주었다. 진짜일까, 상관없다. 나는 지금 손을 잡고 있다.

환호라는 목소리에 박수라는 악기가 더해진다. 대견하다는 듯한 박수소리는, 우리 둘을 향해 있었다. 익숙한 아버지의 소리도 들렸으니, 아버지. 지켜보고 계셨군요.

당신은 내게 입으로 말했다. 따뜻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황홀했다. 당신은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말을 담는 것으로 대답했다.

나는 먼저 뻗은 손을, 먼저 가져왔다. 한 번이라도 더 닿고 싶어, 다시 뻗을까 하다 생각을 접었다. 이내 그당신도 손을 가져간다. 그리곤 바로 일어서서, 특유의 반질거리는 컨버스를 보여주며 걸어간다. 컨버스 관리 하나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던 당신이었지. 그에 걸맞게 아주 새 것 같은 컨버스였다.

혹여라도 당신이 볼까, 손바닥 아래에서 추스른다. 몇 번을 닦아내다 다시 눈을 감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불러보려고.

‘사랑하는 _____’

내 앞에 낯선 여성이 나타났다. 두세 번, 깜빡이다 깨닫는다. 이제 당신을 보내줬구나. 나는 당신을 봤을 때처럼, 마른 웃음을 지었다. 이제, 깜빡일 때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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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 설명을 보지 않았습니다. 아, 정확히는 전체 해석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이상하게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참 이상하죠. 저는 왜 이런 상상을 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10.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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