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스케치
타인의 감정을 건들여 보는 것이 이번 기획의 핵심이었다. 테이블은 하나, 의자는 두 개. 이때 중요한 것은 딱 적당한 사회적 거리.
오늘의 의상은 피처럼 붉은 드레스.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것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순간의 강렬함과 몰입, 그것이 필요했다.
관객은 주인공이 되어 무대 위에 앉았다. 주어진 일은 딱 하나. 서로의 눈을 마주보는 것. 무덤덤하다가 갑작스레 눈물을 왈칵 쏟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들키지 않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자리를 뜨는 이도 있었다.
모든 것은 예상대로였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눈을 감았다. 기대감은 없었다. 그저 앞에 앉은 관객이 오늘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눈을 마주한 이 순간에 대해 잠깐이라도 떠올리기를 바랐다. 그 정도면 오늘의 프로젝트는 성공이었다.
그가 나타났다. 걷잡을 수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잡기 위해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의 눈빛이 말했다. 괜찮아. 나는 잘 지냈어. 분명 당신도 잘 지냈을 거야. 그렇지?
울컥하며 울음이 밖으로 새어나오려는 찰나, 그의 눈이 다시 말했다. 아니야. 울지마. 이렇게나 멋진 당신을 봐. 힘든 순간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떠올지마. 이 순간 당신은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
룰을 어겼다. 내 계획에 결코 없던 일. 손을 뻗었다. 눈빛만 닿기엔 촉감이 애타게 그리웠다.
테이블 위로 손을 뻗자 그가 소년처럼 웃었다. 그리고 손을 마주잡고 말했다.
"때때로 당신을 떠올렸어. 그런데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어. 이렇게 만질 수 있으리라곤 더더욱 몰랐지."
관객들이 하나 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전시장을 메운 박수소리는 우리를 소년과 소녀로 만들기 충분했다.
(4.3매)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