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샤라웃

매일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던 난
진짜 사랑을 전했을까.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적당히.
서로 다치지 않게.
서로 잘 걸을 수 있게.
그렇지만 그럴듯한 관계.
그런 식으로 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때의 난 왜 그런 식으로 말했을까.
어렸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지금도 사실 그때보다 얼마나 더 성숙해졌는지.
그렇게 아이들에 대해 나에 대해 자신했다.
지금은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선생님.
인생에 먼저 선 사람.
먼저 걷는 사람.
곧게 걸어야 한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고 걷는다.
한편으로는 자신만만하게 걸었다.
때론 쪼잔하고 애매한 방식으로 아이들은 대했다.
진심이 담겨있지 않아도 담긴 척 했다.
어른의 위선으로 아이들이 진심이라 느낄 수 있게 포장했다.
자신의 아이들을 험담하는 동료 선생님들을 비판했지만 나 역시 거기서 꼿꼿하고 고고했다는 건 아니다.
동조했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다.
맞장구도 쳐주고, 때로는 거들기도 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맹목적이다시피 나를 봤다.
아이들의 순수한 사랑에 넘어가는 듯 보이다가도
결국 나는 나대로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절대로 소리를 지르거나 매를 들지 않았다.
진짜 그랬던건지 모르겠다.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은 아니다.
내가 먼저 아이들을 놓았다.

평정과 이해. 그리고 인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자만했다.
사람은 저절로 나이들어간다.
저절로 성숙해지진 않는다.
동심, 순수함을 담보로 한다.
어쩌면 사람은 세상이 내놓은 변화무쌍 만찬을 꾸역꾸역 먹는 척하지만,
그저 황홀경에 취해 따라간다.
불합리하고 이상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그렇게 되어버리는 과정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합리화한다.
어쩌면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을 내비쳤을 수도 있다.
단지, 내가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나를 열심히 미화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편협. 배우려 하지 않는 태도.
굳은 채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어디까지나 다짐에 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딱히 나의 이런 다짐과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마주보려 하면 난 도태된다.
휩쓸려 현상 유지에 만족하면서 살아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여전히 난 이런 시기를 지나지 못했다.
더 나이가 들면 아이들의 기억 속 처럼
그렇게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건지.
그저 외면하고 싶을 만큼 따뜻하게 미소지어줄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졸업식날.
아이들은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루해한다.
난 아이들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본다.
선생으로서 도의적 책임과 의무를 다 했는지.
미안한 마음.
그 이면엔 징글징글한 아이들과 이별에 홀가분함. 여전히 자라지 못한 나를 들여다보며 울고 싶고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다.
여전히 나에게도 학교는 너무 좁고, 답답했으며 시시하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곳으로 가라고 했다.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했다.
이 곳에서 결정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
사실, 모든 것이 이 곳에서 결정된다는 말을 차마 못해서이진 않을까.
니가 세상에 나가면 얼마나 고통 가득한 현실이
니 발목을 붙잡을지
날개를 꺼뜨릴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빨리 뛰어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
난 그 많은 마음들로 마지막 인사를 주저하고,
매해 덜 웃게되는 것 같다.
마음이 조금씩 까매진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 정말로 선생님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다.
’매일 기도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그건 너무 따뜻해서 외면하고 싶은 모습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마저 덧붙이고.
다시 만났을 때 매일 기도를 하고 있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아마 영원히 묻지 않을 것이다.‘
묻지 않아 다행이다.

영원히 묻지 않고 싶어하는 물음에
선생이라는 이름뿐인 영원히 자라지 못한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답한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을 꺼내며 순수함을 물들인다.
이렇게 내 검은 마음을 조금 닦아본다.

(10.3매)

1

0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