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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웃

<질투도 자리가 있습니다만>

목적지를 잊기로 하셨다니요. 저는 어제만 해도, 길을 잃은 줄 알았는데 어쩌면 목적지를 잊은 게 아닌지 당황한 걸요.

질투의 역치는 저도 낮습니다. 높은 사람 있겠습니까. 내적 질투로 흘려보낸 그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아무‘에게나 생긴 질투 아닙니다. 대학 병원 이사장 막내딸 진주, 연이은 과외로 컵떡볶이 못 나눠 먹는 동연이, 투룸 월세 내본 적 없는 은해. 저도 부러워요. 탐나고요. 사람 참 이기적 이대요. 견물생심이라고, 형제 많고 사랑받는 옆집 태영이가 이재용보다 더 부러워요.

매일 누락 없이 질투를 반복하다 보니 질투는 뚜렷한 형태가 아니라 느끼고 있다는 느낌만 그저 남을 뿐이더만요. 부풀려지는 느낌이 공유될 때 끝 모르고 깊어졌습니다. 지우려니 번기지만 합니다.

질투에게는 질투의 자리가 있다는 걸 인정할까요? 어때요? 내가 아닌, 나를 이루는 게 아닌 것들은 제가 정할 기회조차 없없지 않나요.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애초에 연연할 필요도 없어요.

부지런한 청년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땀 흘리고 있어요. 본인이 선택해서. 자진해서. 당신이 말씀하신 ’부족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가 아니라요. 잘하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그 무엇이 자꾸 구석으로 밀려나게 두지 말기로 해요. 마음 접기를 접어보기로 해요.

p.s. 목적지를 잃기로 했든, 나침반이 고장 났든 어찌 됐건 당신 마음 모두 그저 자연스럽다는 사실.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서로 질투만 하는 세상, 어떤 누군가는 질투받는 대상이어야 않겠습니까? (저는 저라 믿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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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원래 글 입니다. (주제: 질투, 일자: 25. 5. 22.)

멋진 외형, 많은 돈, 좋은 집, 많은 관심까지 세상엔 부러운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질투심이란 게 아무한테나, 말처럼 쉽게 생기거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에 조금은 동의하기 어렵겠습니다.

질투의 역치가 낮아서 쉽게 동기부여가 됩니다.
하지만, 질투의 역치가 낮은 나머지 마치 적도 위에서 나침반을 든 것 마냥 방향을 찾지 못한채 빙빙 도는 나침반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질투는 타인의 행복을 저주하게 합니다. 
나와 같은 위치로 끌어내려 스스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게으르게 증명하려 합니다. 
남에게 저주는 퍼부음과 동시에 저주는 나의 머릿속과 입을 거쳐갑니다.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가래처럼 불쾌합니다.
그만하고 싶어졌습니다. 
내가 올라가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목적지를 잊기로 했습니다. 
저는 어립니다. 목적지까지 갈 체력과 시간이 충분합니다.

시각과 후각에 의존해 내가 갖고 싶은 것과 냄새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산책에 나선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눈 앞에 끌리는 것을 향해 갈겁니다.

(6.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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