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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웃

뾰족하게 반듯한 나무 의자에, 흑발을 곱게 땋은 여인이 앉아 있다. 바닥에 질질 끌리는 새빨간 드레스 자락, 앞에는 자그마한 정사각형 테이블 하나. 사람들이 하나둘, 그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그동안 여자는 눈을 감고 있다. 상대가 자리에 앉은 것이 확인되면 천천히 눈을 뜨고, 둘은 조용히 눈을 마주친다. 말은 없다. 눈빛만을 교환하는 것, 그것이 이 자리의 유일한 규칙이다. 어떤 이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누군가는 울음을 삼킨다. 이 조우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여인의 체력이 닿는 데까지?

그리고 마침내, 흰 머리에 수염을 기른 남자가 등장한다. 검은색 컨버스. 약속이라도 한 듯. 자유로운 영혼 하나가, 마침내 그 자리에 앉는다. 그녀가 눈을 뜨고, 한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누가 봐도 서로 아는 사람이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고, 눈가가 붉어진다. 마침내 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는다. 작품이, 끝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 예술이다. 지금, 여기, 마리나와 마주 앉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된다. 늘 관람객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무너뜨린다. 79일,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단 몇 분의 편집 영상으로 남았지만, 그 순간을 살다 간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감정과 기억을 품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마리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더 깊은 어떤 것을 들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너무 짧았으면 시시했을 거고, 너무 길었다면 지독했을 것이다. 그 경계 어딘가에서, 마리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매일 바라봤다. 처음 며칠은 유심히 들여다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이게 잘 될까?’, ‘얼마나 오래 걸릴까?’ 나중엔 그냥 일하는 기분이었을지도. 아니면, 끝도 없는 명상.

그런 그녀의 시간에 균열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규칙을 깰 정도로 감정을 건드린 존재. 그녀와 손을 맞잡은 그 남자. 오랜 시간 함께 작업했고, 22년 만에 재회한 연인. 울라.

울라이도 고민했을 것이다. 전 남친이 이런 초대형 퍼포먼스에 ‘오픈런’ 하겠다고 줄 서는 것도 웃기고, 초반 번호면 작품 출발선에 방해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하지만 그는 등장했고, 정확히 그 순간, 작품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마리나가 “지금 여기에 있음”으로 예술가가 되는 경험을 건넸다면, 울라이는 “이런 시간에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또 받을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은 늘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온다. 딱 1,545번째쯤의 타이밍으로.

(6.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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