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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3
1.
"나는 인연을 믿지 않아. 그래서 너를 만난 건 행운이야."
그녀는 내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나는 그 장면을 또 다시 재생했다. 모니터 속의 그녀는 변함없는 목소리리로 다시 말해주었다. 그리운 모습이다.
"오! 저분이 늘 말하던 운명의 상대 인가요?"
너스레를 떠는 세렌(senen)의 얼굴이 위에서 불쑥 나타났다.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그녀를 살짝 밀쳤다. 그녀는 우주선 안을 둥실 떠다니다 벽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았다. 그녀는 이번 화성 탐사에 지원한 유럽계 미국인으로, 한국인 못지않은 유창한 한국어를 뽐내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과 협업중이다.
"얼마 남았지?"
"20분 뒤면 다시 통신이 될겁니다"
우주선 '행운'호의 창 밖을 보니 화성의 붉은 땅이 보인다. 우주선은 4명의 우주인을 태운 채 화성의 궤도를 돌고 있었다. 화성을 탐사로버나 착륙선의 준비는 이미 끝낸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더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 뒤면 화성 뒤에 숨어있던 지구가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세렌은 다른 동료들과 사소한 잡담을 나누다 다시 나에게로 날아왔다.
"그래서... 지구는 멸망했을까요?"
2.
나는 운명을 믿는 사람이다. 인지할 수 없는 어떤 흐름이 나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흐름이 약하다면 거슬러 갈 수 있겠으나 만약 몸을 가누지 못 할 정도로 거세다면 결국 그 흐름의 방향대로 휩쓸려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것은 필연이라 생각했었다. 우리의 만남은 세상이 이끌었을 것이다.
그녀는 궤도를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능력은 계산을 통해 미래를 예언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럴때면 우리의 미래도 계산을 해보라며 우스겟소리를 하기도 했다. (지금와서 말하지만 반쯤은 진심이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화성 탐사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드디어 화성 탐사에 나서게 되었다. 미국, 중국, 일본, 인도 이후 5번째 이다. 다른 나라에서 먼저 보낸 테라포밍 장치들이 화성의 환경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직접 확인하러 가는 임무였다.)
**
지구에서 화성까지의 평균 거리는 2억2500만km이다. 지구와 화성도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기 때문에 서로의 거리는 계속 바뀌는데, 가장 가까울때는 약 5,600만km이며 가장 멀 때는 약 4억1000만km이다. 우주선의 속도나 연료등을 계산한다면 화성까지 가는 데는 4~5개월이 걸린다. 그러니 화성까지 가는 최단거리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지구와 화성의 공전,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하는 것이 필수다. 그녀는 이 계산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그녀는 이번 탐사 우주선의 이름으로 '행운호'를 제시했고 경합끝에 채택되었다.
나는 신체가 건강했으며 공학을 전공했고 좋은 가정 환경 덕에 모나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화성 탐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때가 때마침 26개월 주기로 찾아오는 최대 효율의 발사기간이었다.
나는 이를 운명으로 느꼈다. 모든것이 화성탐사를 위해 준비되어온것만 같았다. 나는당연히 지원했고 필연적으로 합격했다.
5개월전, 나는 화성 탐사선에 올랐다. 나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고양된 나를 걱정하던 그녀는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여행의 운을 빌어주었다. 우주선은 항해를 시작했다.
3.
2개월 전이었다. 수 개월을 좁은 우주선 안에서 지내온 동료들은 다행이도 큰 다툼없이 친분을 쌓아갔다. 생명과학자 한 명, 의료인 한 명, 그리고 공학자인 나까지 모두 한국인 들이었고, 우주선의 운행과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세렌 혼자 외국인이었다. 물론 한국어를 잘해서 이질감은 없었다.
세렌은 우리들에게 종종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는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럽에서 유명한 엔지니어로, 이름만 대면 모든 유럽인들이 안다고 했다. 그리고 자랑스럽에 아버지의 이름을 말했었지만 발음이 어려워 한번에 기억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니, 굉장히 유명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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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아파트 한 단지 크기의 우주선이 발사된 적이 있었다. 화성 기지를 건설하여 그안에서 실내 생활을 하며 외부환경이 테라포밍 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목적이었다. 모든 인류의 꿈을 안고 우주선이 발사되던때 카르만 라인을 넘어서던 우주선에서 신호가 끊어졌다. 우주선 고장에 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와 비난이 오고 았는다. 선상 반란이 일어났다는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미국 측에서 제공한 전자 장비가 인치 야드법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미국은 미터법을 따르지 않아 우주선을 폭파시킨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우주선 고장의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제어장치가 고장난 것은 현실이었고 우주선은 계속해서 지구 근방을 커다란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을것 이라 추측되고 있었다. 그안의 선원들은 음식 고갈로 다들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슬픈 사실만은 추측이 아니라 확정적인 사실이었다. 세린의 아버지는 그 우주선에 타고 있었으며 지구로 마지막 신호를 보낸 인물이었다. 그 신호에는 우주선 제어 장치의 고장 사실과 함께 아직 어렸을 세렌에게 보내는 미안하다는 말이 담겨있었다.
그날도 일과에 따라 맛없는 튜브형 음식을 짜먹고 운동기구에 갇혀 근력운동을 한 뒤 쉬고 있을때였다. 나는 보통 그녀와 화상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이제 지구에서 제법 멀어져 신호를 주고 받기에는 십 수분의 시차가 발생할 정도였다. 우리는 어두운 밤하늘에 대해 이야기 했다. 습관적으로 나는 유리창 밖에 어두운 우주를 바라봤고 소행성을 발견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우주선 근처를 날아가고 있는 지름 20km가량의 암석 덩어리였다. 며칠간의 관측 후 확보한 데이터를 그녀에게 보냈다. 그리고 몇 일 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소행성은 지구를 항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계산이 맞다면 2개월 뒤 지구는 공룡이 멸망했던 것 처럼 또다시 하늘로부터 거대한 재앙이 떨어질 것이다. 지구 멸망에 관해서 그녀는 지나치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걱정한다고 운석이 사라질것도 아니며, 이런 소행성이 행성에 떨어지는 것은 흔한일이라고 한다. 그저 현세의 인류가 운이 없을 뿐이라고.
4.
물론 인류는 이런 불운에 정면으로 맞섰다. DART(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프로그램을 재가동 하여 폭탄을 실은 발사체를 보내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보통 3-4개월은 걸리는 과정을 단기간에 하려니 수많은 문제가 따랐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핵폭탄을 이용해 소행성을 부수거나 궤도를 바꾸겠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폭발해버린다면 그 곳은 그곳은 그야말로 불바다가 되기에 각자 자신의 영공 위는 지나는 것을 반대해 정치적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외에도 레어저를 쏘자는 사람등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것은 실패하였는데 이는 소행성을 너무 늦게 발견한 것에 기인했다. 보통 지구 위협 소행성의 경우 대부분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 수개월, 길게는 수 년 단위까지 미리 알아채고 방법을 세울 수 있지만, 이번 소행성은 태양 바로 뒤에서 날아온 터라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행운호에서 비슷한 궤도로 운행을 하는 바람에 운 좋게도 더 빨리 발견한 것이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이 소행성의 이름을 이를 발견한 우주탐사선의 이을 붙여 'haengun-asteroid'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와 그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마치 '행운의 사신', '기적적인 멸망'같은 느낌이라며 웃었었다.
어떤 인류는 불운에 굴복했다. 지구 멸망에 관한 종교가 득세하고 바이러스 처럼 퍼져갔다. 벙커를 파고 땅으로 숨어드는 이들도 있었고 문명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위협받고 있었다.
속절없이 시간을 흘러갔다. 지구는 멸망으로 다가가고, 어찌됐든 우리는 화성으로 나아간다.
5.
화성의 붉은 땅이 우리를 반겼다. 공교롭게도 화성에 도착한 시각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때가 비슷했다. 행운호는 두 시간 전부터 화성 주위의 위성 궤도를 를 돌고 있었다. 지구와의 통신은 모선만 가능했으므로 착륙선을 타고 화성 표면으로 내려가면 지구의 상황을 알 길이 없었다. 그것보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화성 탐사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도 우리는 화성의 뒤편으로 공전한다. 다시 지구가 보이는 앞쪽으로 나오기까지는 수십분 동안은 지구와의 통신이 불가능하다. 과연 지구는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우리는 화성의 뒤편 막 접어들 때, 그녀로부터 신호가 날아왔다. 30분 뒤면 소행성이 대기권에 진입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거리로 인한 통신 지연은 11분정도 이니 현재 지구에서는 19분 뒤면 소행성이 떨어질 것이다. 과연 어떻게 될까?
어서 빨리 지구와 통신이 다시 되길 바랄 뿐이다. 초조한 마음에 나는 녹화된 화상 시지를 켰다.
"나는 인연을 믿지 않아. 그래서 너를 만난 건 행운이야."
그녀는 내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나는 그 장면을 또 다시 재생했다. 모니터 속의 그녀는 변함없는 목소리로 다시 말해주었다. 그리운 모습이다. 죽음의 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없다니. 이것도 운명일까?
"오! 저분이 늘 말하던 운명의 상대 인가요?"
죽음의 걱정을 지우려는듯 평소와 다르게 과장해서 너스레를 떠는 세렌(senen)의 얼굴이 위에서 불쑥 나타났다.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그녀를 살짝 밀쳤다.
세렌은 저 멀리서 다른 동료들과 불안을 지우기 위한 잡담을 나눈다.
"공룡도 이렇게 멸망했겠지?"
"지구상에 대부분의 생명이 죽겠지.."
"어쨌든 우리는 운 좋게도 살아남겠네. 어쩌면 인류중에 우리만 남을지도 모르겠어"
"이게 과연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
6.
우주선은 내달렸다. 우주 너머로 태양 빛이 보이고 이어 지구가 떠올랐다. 우주선에 탄 우리들은 지구에서 올 통신을 기다렸다. 지구는 멸망했을까? 그녀는 살아 있을까? 멸망은 인류의 운명인걸까? 아니, 운이 좋아서 살아남을지도 몰라.
이대로 신호가 오지 않으면 지구는 멸망한 것이겠지.
7.에필로그
6개월뒤 우리는 지구로 귀환했다. 그녀는 다를 웃으며 맞아주었다. 역시 화면보다는 실제로 보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녀는 말했다. 행운이 필요한거는 내쪽이 아니라 자신들 쪽이었다고.
예상대로라면 소행성은 시베리아 한 복판에 떨어질 예정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근방 수 킬로미터는 폭격에 맞은듯한 피해를 입었을테고, 이때 발생한 지잔과 해일은 전지구적인 피해를 입혔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을 뒤덮은 소행성과지각의 파편들은 하늘을 뒤 덮을테고 지구는 차갑게 식어가며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운이 좋았다. 이미 죽은 세렌의 아버지가 지구를 구했다.
소행성이 대기권으로 진입하려던 순간, 우주를 빠른 속도로 떠돌던 세렌의 아버지가 타고 있던(지금은 시신이 된) 우주선이 우연히도 소행성과 부딪혔다. 공중에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이 폭발은 소행성의 궤도를 아주 살짝 바꿨다. 이렇게 각도가 틀어진 소행성은 지각에 비스듬하게 부딪혔고 절묘한 입사각으로 인해 다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마치 물수제비를 하듯이.
물론 피해가 없지는 않았는데, 하필 떨어진 곳이 한창 내전 중이던 국가의 친정부 세력이 집결해있던 도시였다. 소행성의 바뀐 각도 덕분에 위력이 많이 줄긴 했지만 도시 하나를 날려버리기엔 충분했고 내전은 우주적인 개입으로 종료되어 버렸다. 반군의 지도자는 새로운 국가를 세우며 우주로 부터 당위성을 천명 받았다며 오른 손을 하늘을 향이 치켜 올렸고, 국민 모두들 이에 동조하여 열광적인 취임식이 연출 되었다. 그들에겐 진정으로 행운의 소행성이었다. 누군가에겐 불운, 반대편에겐 행운.
행운 호의 우주인 4명은 기자회견을 했다. 이때 된 사실로 세렌(seren)은 웨일스 어로 '별'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름의 본 뜻은 serendifity(의도치 않게 얻은 행운이나 예상치 못한 성공)라고 한다. 이는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것인데, 정말이지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우연히도 소행성을 빨리 발견한 나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이것의 궤도 계산을 완벽히 해낸 그녀도 업적을 크게 인정 받았다. 우리는 세기의 커플로 세상의 환대를 받았다. 이쯤 되니 나도 운명이나 필연에 대해서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런 성공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내가 이 운명에 도대체 뭐라도 개입한게 있을까?
옆에 나란히 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싱그럽게 웃으면서 이 모든 게 행운이라고 하겠지. 우리가 만난 것처럼.
(31.9매)'초고'라는 취지에 맞게 한 호흡으로 쭉 썼습니다. 그래서 흐름이 매끄럽지 않지만 이것은 '초고'이니까요.
'초고'라는 취지에 맞게 오탈자 검수는 하지 않았습니다. 귀찮아서 그런게 아니라 '초고'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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