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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큰 차이는 이성의 유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을 지닌 영장류다. 그래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주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전제는 부정하지 않는다. 결론에 의문이 있다. 인간이 ‘언제나’ 그런 존재는 아니다.
사유하지 않는 육체는 악(惡)과 비슷하다. 유대인 학살 주범 아이히만. 사악한 악마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의 전범재판 참관 보고서는 말한다. 그는 ‘평범한’ 시민이었다고. 아이히만의 지인들도 그가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고 했다. 그런 이가 만행을 저지른 이유는 뭘까.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한다. 누구나 당연히 여기고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 전범재판 당시 아이히만은 그저 “상관의 명령을 따랐다”고 답했다. 관료주의의 효율성을 위해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었다. 내적인 갈등 없이.
이처럼 악은 평범하다. 사이코패스만이 저지르는 게 아니다. 참사 희생자를 ‘오뎅’에 비유해 조롱한 페이스북의 한 게시글. 사회 부적응자의 ‘관종짓’으로 자칫 생각된다. 그런데 이 글의 ‘좋아요’는 2만 개. 그들이 ‘좋아요’를 누른 의도가 무엇인지 확언할 순 없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어쩌면 주위에 있는 시민이 사유하지 않는 육체라는 방증이었다.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고 환호한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 내 옷깃을 스쳤을 우리 이웃이다.” ‘악의 평범성’을 표제로 한 이산하 시집의 구절.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도 늘 선이거나 악일 수 없다. 그렇지만 선에 가까워질 필요는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성을 지닌 영장류로서. 그 시발점은 사유하고 행동하는 데서 출발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때. 주위의 악에 관심을 가질 때. 그때 또 다른 아이히만의 등장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선(善)의 이치가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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