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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5일 금요일
날이 따스했던 오전 10시 17분
연재의 손가락이 잘린 순간이었다.
연재는 산업디자인과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단짝을 따라 별 생각 없이 학과를 선택했지만, 운 좋게도 적성에 맞아 과에서 공모전과 성적으로는 내로라하는 산업디자인과 학생이었다.
연재는 대학생이었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시험을 끝내고 동기들과 뒤풀이 하며 하루가 멀다고 술을 마셨고, 미뤄뒀던 과제와 대외활동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대학생이었다.
연재는 스물세 살이었다. 강아지보단 고양이를 좋아하고, 날씨가 좋은 날엔 한적한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스케치 하기를 즐기는 그저 평범한 스물세 살이었다.
5월 15일,
공모전을 준비하던 연재는 스케치로만 구상해 뒀던 친환경 다회용 커피 캡슐을 만들고자 했다.
금형에 쏟아부었던 알바비가 얼마였는지, 어렵사리 대여한 사출기로 드디어 그 결과물을 마주할 순간이었다.
순간이었다.
단, 3초였다.
어제 들었던 노래 가사 제목이 뭐였더라- 흥얼거리며 기계를 작동하다 그만 연재의 손가락이 프레스에 끼이기까지 단, 3초였다.
급하게 비상정지 버튼을 눌렀지만, 연재의 손은 이미 일그러진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들은 소식은 참담했다.
단순 골절이 아니라, 접합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정도에서 멈춘 게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도 나머지 손가락은 접합이 가능하네요. 학생, 운 좋은 줄 알아요."
되돌릴 수 없는 건 한 손가락이었고, 전체 손가락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행운'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와닿지 않았다.
입원실에 멍하니 누워 있던 며칠 뒤, 우연히 티비 속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아, 제목이 '행운을 빌어줘'였구나"
연재가 기계를 작동하며 흥얼거리던 바로 그 노래였다.
가사도 기억나지 않았던 그 멜로디가 연재의 머릿속에서 광광 울렸다.
며칠 후, 공모전 발표가 있었다.
연재는 부상으로 끝내 참가하지 못했지만, 동기도 참가한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터였다.
하늘이 무심하게도, 연재가 구상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다회용 커피 캡슐이 대상을 받았단다.
아이디어도, 설계도, 용도도.
시상 후기에 올라 온 동기의 얼굴은 티 없이 해맑았다.
"제가 수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노력을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의 운도 따라준 것 같네요!"
누군가에겐 행운이었다.
하지만, 연재에게는 아니었다.
그건 불운이었다.
삶이 행운으로만 가득했다고 생각했던 연재는,
좋은 운이 따랐다는 말 뒤엔 사실,
어딘가에서 그만큼 잃은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한동안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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