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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3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성과를 이루거나 지위에 오른 사람이 주로 하는 말이다.
운이 좋다는 것은 아주 복잡한 일이어서 나는 크게 세가지 차원에서 행운을 생각한다.
첫번째 의식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해 노력하고 좋은 기회마저 만나 결실을 이루는 경우다.
두번째는 타고나게 운이 좋다는 것, 요상하게 재수가 좋은 친구. 복권에 당첨된 경우, 돈 많은 집에 태어난 경우를 포함해 자신의 적성진로와 맞는 집안에서 태어난 경우 등이다.
세번째는 나는 운이 좋다는 태도를 가지고 지내는 것. 소소하게 만나는 것들마저 행운이 되는 경우다. 조금 결이 다르지만 '나 운이 좋다'라고 할만한 거리는 된다.
10대의 나는 첫번째 행운에 미쳐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행운은 딱 노력한 것에 화룡점정이 되는 운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행운은 얻지 못했다.
20대의 나는 두번째 행운으로 관점이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집안 형편을 떠나 태어난 연도와 꿈이 맞아 떨어지는 거대한 차원에서의 운을 체감한 시기이기도 하다. "노력하면 된다"는 어르신들의 말씀과는 다르게 바늘구멍 같은 시험은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는 싸움이었다. '노오력'이라는 자조가 한창 밈으로 유행했던 시절이다.
다행히 원하던 시험에는 붙었다. 내가 붙었던 해의 경쟁률은 약 180대 1이었다. 하지만 그때 운을 다 써버린건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싶은 일들이 벌어졌다. 몇 달이면 괜찮겠지 했던 일이 몇년이 됐다. 3년 동안 사람을 바꿔가면서 조직에서 유명한 폭탄들과 같은 팀에서 일했고, 그 많은 업무 중에서도 내가 가장 하기 싫고 못하겠다 싶은 일만 주어졌다. 첫 발령부터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많이 배우고 사람도 챙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바닥까지 떨어져내렸고, (지금 생각하면)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행운은 주어지는 것이라는 두번째 관점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한다고 이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본부에 자리가 난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를 냈다. 누울 자리도 안보고 뛰어들었다간 함부로 지원해서는 혼자 바보되는 일이다.
생각지 못했던 루트로 소문을 들었다. 비선호 부서라서 생기는 자리였다. 그런데 본부 사정과 조직 상황에 어두웠던 나에게는 그저 입사 때부터 고려했던 선호 부서였다. 언젠가 일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게 옮긴 뒤로도 힘든 일은 이어졌다. 하지만 내가 해보고싶었던 일이라 그런지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여전히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다.
그 후로도 대외적인 '비선호 부서'를 전전했다. 그래도 나름 취향껏 선택한 곳이었다. 나는 이 조직과는 좀 다른 인간임을 알게 됐다.
어찌 보면 그건 운이 아닐까? 남들이 탐내는 것과 방향이 다르다는 건 경쟁 사회에서 좀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거니까.
그런 생각이 들때 쯤 승진을 했고, 이번에도 원하는 부서로 지원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부서로 발령이 났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비선호 부서라서 당연히 갈줄 알았다. 발령 전에는 다른 사람들도 속으로 "왜 저런데 지원하지? 당연히 가겠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았으며, 가장 긴장도가 높고 보수적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폭풍 같던 적응기를 거쳐 지금은 또 배운게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생활 동안 운이 얼마나 많이 작용할지 가늠할 수도 없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나는 스트레스에 아주 취약한 인간이 되었다가, 지금은 제법 대응할 줄 아는 인간이 됐다. 직장생활 보다는 조금 더 길게 갈 인생에서도 똑같이 생각하려고 한다.
매 번의 선택에서 원하는 걸 선택하고, 주어지는 상황에 또 맞닥뜨려 살아가는 것. 그러다보면 운 좋게 원하는 대로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는 것이다. 들뜨게 행복한 순간을 인생에서 다 모아봤자 얼마 안되겠지. 그래도 내가 원했던 행복을 얻는 행운의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다시 첫번째 행운의 관점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소소하게 세번째 행운도 챙기면서 살고 있다.
(9.9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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