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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4
어느 정도의 좋은 일이 행운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복권 당첨, 놀러가는 날의 맑은 날씨, 원하던 목적 달성, 의도치 않은 행복 등등 행운 찾아오는 길은 수 없이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가 주장한 ‘행운은 성격이다’ 라는 말인데,
행운은 곧, 해골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1-100점 단위의 행운이 있다면 난 행운의 판단 기준이 몇 점일까.
이전 글에서 난 평범하다 못해 스스로를 불운하다고 평가했다.
난 진짜 행운 없는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SNS, 유튜브에 절여진 내가 크고 작은 행운을 잊고 살았다.
50점은 커녕 7~80점의 행운에 기준을 두고 50점, 60점의 행운에도 감사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간간히 찾아오는 80점의 행운에 감사했을까?
아니다.
간간히 찾아오는 행운에 감사하기보다.
자주 오지 않는 녀석에게 툴툴대기만 했다.
오늘은 내가 가벼이 혹은 당연하게 여긴 행운들이 있는 가를 생각해봤다.
첫 번째 행운
나는 눈썹이 짙다. 이제는 눈썹 정리도 하고 숱도 쳐서 진한 정도지만 어릴 땐 눈썹만 보였다.
특히 어른들, 그 중에서도 어머님들이 좋아하셨다.
부모님이 나에게 주신 행운이었다.
일화로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신입생인 1학년 때 난 전교 부회장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출마했고 3명의 후보와 경쟁했다.
학칙으로 빡빡 민 머리, 같은 교복, 비슷한 공략
결국 그냥 첫인상 투표였다.
근데 내가 뽑혔다.
그리고 볼살 많고 시꺼먼 눈썹을 전교부회장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다.
날 기억하기보단 내 눈썹을 기억하다니...
그래도 결국 당선됐으니 행운이었다.
두 번째 행운
친구 같은 아버지가 있다.
경상도 남자는 유명하다. 무심하고 가부장적이기로 말이다.
그리고 난 경상도 남자의 뜻을 중학생 때 놀러간 친구집에서야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아마 좀 노셨을거다.
20대 시절의 사진과 아버지의 주량은 나의 가설에 상당한 증거가 된다.
그래서 크고 작은 고민을 아버지와 많이 나눴다.
성인이 되고 아버지와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큰 행운을 가졌는지를 깨달았다.
세 번째 행운
인복이 좋다. 이유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지만, 살면서 미움을 받은 적이 없다. 근데 누군가 날 미워했다면...?
세 번째 행운은 눈치가 좀 없는 걸로 바꿔야겠다 ㅎ
사소하지만, 내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행운들이다.
로또 당첨! 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행운으로 느껴진다.
난 살면서 많은 행운 그리고 불운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갖게된 결론은 ‘행운과 불운은 혼자 오지 않는다. ’는 것이다.
행운와 불운은 반드시 동행한다.
이것도 내가 어떠한 자세와 생각을 가졌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는 나에게 행운 혹은 불운이 오면 반드시 따라올 행운과 불운을 대비한다.
기억 하나, 20살 첫 연애를 한 여자친구가 나와 헤어지고 내 친구를 만났다.
지독한 성인식이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미숙해서 덜 아팠다. 헤어진 것 보다 친구를 잃었다는 것이 더 아팠다.
10년 가까이 알던 친구였기에 온 세상 불행이 나에게 온 것 같았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조용히 참고 넘겼다.
주변 사람들이 더 화를 내줘서 그럴까?
그냥 그 친구를 이해하려했다. 용서는 아니지만 증오하지 않는 오묘한 무엇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그 때를 떠올리면 많은 생각이 들지만, 나는 그 불행을 양분 삼아 성장했다.
어떤 일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나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서 성장했다.
기억 둘, 성인이 되고 난 직접 돈을 번다는 것에 미쳐있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되는 세상에서 돈을 빨리, 많이 그리고 쉽게 벌고 싶었다.
주식, 코인 유행하는 거라면 다 해봤다.
코로나 지원금, 전세계적인 지원금으로 인해 주식시장은 폭등했고 난 나름의 이유도 없이 주식을 사고 팔았다.
운이 참 좋았다. 400만 원을 들고 시작한 주식이 1년도 지나지 않아서 1100만 원이 되었다.
세상이 만만했다. 돈이 돈처럼 보이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버는 10만 원, 20만 원에 감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위험한 테마주, 공모주도 겁 없이 매매 했다.
그 때의 난 주식을 다 아는 듯 행동했고 결국 대가를 치뤘다.
200만 원. 원금도 지키지 못하고 모든 주식을 매도했다.
그래서 주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내가 주식으로 도박을 했다는 것과 사기를 당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이후 다시 시작한 주식은 나의 경제 관념과 세상을 보는 눈을 주었다.
내가 잃은 200만원으로 나의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투자를 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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