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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4

'운을 뒤집으면 공이다.' 교보문고 옆 벤치에 앉아서 나는 이 말을 들었다. 예쁜 누나가 말을 걸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길을 물어보더니(전화번호는 물어보지 않고) 곧바로 관상으로 넘어갔다. 전형적인 사이비 수법. 이런 일이 자주 있다. 내 관상이 좋다고들 하는데 그냥 사이비 피해자 관상인게 아닐까? 사이비인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시간도 널널해서 들어보기로 하고 교보문고 옆 벤치에 앉았다. (사이비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종종 그들이 하는 얘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들어보는 편이다. 물론 예쁘기도 했으니까.) 그 사람은 내 성격과 성향을 속속들이 맞추고 사소한 가정사-부모님이 기가 세다, 자주 싸우시겠다. 할머니가 절에 다니신다 등-까지 꿰뚫어 보았다. 뭔가 심리상담을 받는 기분? 그때까진 좋았으나 그 뒤로는 사주팔자니 뭐니 하면서, 팔자를 고치려면 자기가 다니는 절에 당장 가야된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때 나는 흥미도 다 떨어져서 그냥 커피 한 잔 사주고 헤어졌다. (사이비만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니었으면 애초에 말을 안 걸었으려나...)
그 사람은 남의 운을 바꾸거나 만들어내는데 아주 심취한 것 같았다. 운도 실력이라면 그 사람은 아주 실력자임이 분명하다. "운을 뒤집으면 공이 되잖아요. 그런데 oo씨는 할머니가 절에 자주 가셔서 공덕(功德)이 많이 쌓여 있어요. 쌓은 공(덕)이 다 운으로 환전되는 건데,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공과 운 사이를 가로막는 '업'이라는 게 있어요. 업보라고들 하죠. oo씨는 업이 참 많아요. 그것만 없으면 운이 넘쳐 흘러요. 그걸 없애려면..." 그 사람의 부처님은 능력주의자신 것 같다. 운도 실력이고, 공도 실력이고. 에라이, 그냥 공을 뻥 차버리고 싶다. 능력주의 아래 웬만한 것들 다 버리고 싶다. 나는 공 차는 실력도 변변치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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