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운이 눈처럼 녹네
[최종본]
조상이 덕을 덜 쌓았다.
한라산, 소주 말고. 진짜 한라산. 백록담을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한라산.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도 막연하게 백록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뭘 해도 안 풀린다는 아홉수가 작년이었으니까. 올해는 시작부터 좀 풀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바람.
사실은 잘 풀리는 것을 넘어서 크게 한탕하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삶은 무난했다. 큰 도전을 안 했다. 큰 실패가 없었다. 당연히 큰 성공도 없었다. 시냇물 흘러가듯 서른이 되었다. 서른인데 어른은 아닌 듯한 느낌이 꽁무니에 붙어 안 떨어졌다. 한라산 등반 전에 일행과 근황을 나누면서 그 느낌은 더욱 집요해졌다. 다들 나보다 어른이고, 한탕 해 본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잡생각이 많아졌다. 얼른 한라산을 오르면서 잡생각을 떨쳐내고 싶었다.
등산 당일 새벽. 기상악화로 삼각봉 대피소까지만 탐방 가능하다는 알림 메시지가 왔다. 눈이 많이 내리거나 쌓인 눈이 충분히 녹지 않으면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정상까지 가는 길을 막아두는 일은 자주 있다고 했다. 일행과 함께 논의한 뒤 그래도 오늘 올라보자고 합의했다.
한라산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는 호기롭게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등산을 시작한 지 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부터 고행이었다. 아이젠을 장착한 신발은 중심을 잡기 어려워졌다. 강추위를 예상하고 껴입었는데 등산하다 보니 옷 안에 땀이 차 불쾌해졌다. 일행끼리 대화는 점점 사라지고 묵묵하게 등산은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도 한라산은 황홀한 풍경을 자랑했다. 흰 눈이 모든 걸 뒤덮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곳만 길이 되었다. 허공에 핏줄처럼 번진 앙상한 나뭇가지. 얼어붙은 물이 고여 있는 움푹 파진 웅덩이. 공평하게 희게 지워져 있었다. 나무둥치에 앉은 새가 빤히 일행을 보다 눈 사이로 날아갔다. 대피소까지 절반 정도 남았을 무렵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봤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저 눈발 하나하나에 가라앉아 있던 생각들이 다시 깃들었다.
이번 생에 내가 쌓은 덕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후대가 쓰는 게 아닐까. 비니가 비뚤어져 고쳐 쓴다. 지금까지 내가 한탕 못 한 건 조상이 쌓은 덕이 부족해서 아닐까. 일행 중 한 명이 선두가 힘들면 바꿔주겠다고 한다. 한 사람이 갖고 태어난 운은 실은 조상이 쌓은 덕에서부터 시작하는 건 아닐까. 군복을 입고 빠른 속도로 하산하는 사람들을 피하려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 올라온 길을 다시 보니 제법 많이 올라온 듯하디. 대피소까지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느냐고 일행 중 누군가가 물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십 분 전에도 반복된 대화 같다. 덕 생각하다 보니 운까지 왔다. 잡생각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잡생각과 함께 올라가야 했다.
오르는 순서를 재정비했다. 나는 선두에서 물러나 맨 뒷자리를 맡았다.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서 숨을 골랐다. 덕은 돈처럼 쓰면 쓸수록 소모되지 않는다는 나름의 결론까지도 이르렀다. 그러니 운도 아무리 써도 그대로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아무리 덕을 쌓아도 내가 쓸 수 있는 덕이 아니라면 억울하긴 하다. 아직 있지도 않은 후대를 위해 덕을 쌓아야 한다니. 조상님들도 이 진실을 알고 난 뒤 억울해서 덕을 쌓다 말았다면, 이해된다. 인정!
운도 지지리 없다고 억울해하는 친구에게 말해줘야지. 이 친구와는 이런 얘기도 나눈 적이 있다. 친구는 뉴질랜드로 워홀을 갔다. 뉴질랜드에서 제2의 인생을 그려보던 친구였다. 그런데 친구는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필 그 시기에 COVID-19,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극에 달했다. 규율이 엄격해지고, 일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점점 야박해졌다. 결정적으로 비자 연장이 되지 않았다. 자동차까지 샀던 친구는 헐값에 자동차를 팔아넘겼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를 지켜봤다. 인생이 억까라는 말을 붙여줄 수 있다면 이 친구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친구한테 왜 이런 억까가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친구는 크게 좋은 일을 하면서 살지 않지만,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 사는 친구도 아니었다. 덕을 쌓는 쪽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덕을 잃는 쪽도 아니었다. 다음에 친구를 만나면 말해줘야겠다.
네 조상이 덕을 덜 쌓았다.
이런, 전혀 위로되지 않을 것 같다.
대피소에 도착했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하산해야 했다. 대피소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하산하기 전 일행들과 돌아가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사진을 찍었다. 정상까지는 가지 못해서, 오히려 다음에 다시 한라산에 올 명분이 생겼다는 말을 나눴다. 올라오는 동안 눈발은 점점 거세져서 대피소에서도 한라산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니 상상할 수 있었다. 눈 쌓인 백록담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하산도 만만치 않았다. 다리는 등산할 때보다 더 후들거렸다. 내려갈 때 다치는 경우가 많다는 경고를 유념하면서 등산할 때보다 천천히 내려갔다. 그 덕분에 등산할 때보다 일행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다양하고 알찬 이토 준지 작품을 주제로 했던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것들이 소용돌이가 되는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작품 얘기를 언제 나눠볼 수 있을까. 한라산에 같이 있지 않았다면 나누지 않았을 대화도 여기서는 자연스러웠다.
아마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있는 덕과 운을 고민하면서 살겠지. 운 좋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어도 괜히 불안해지고 그러겠지. 덕 봤다고 느끼면서도 언제까지 이런 덕을 보고 살 순 없으리라는 예감도 들겠지. 그럴 때마다 한라산에서 했던 생각을 되짚어 볼 것 같다. 내 조상이 덕을 덜 쌓았다. 이런, 전혀 위로되지 않는데 헛웃음은 날 것 같다. 조상님들 제가 고생을 더 해도 더 원망은 안 하겠습니다. 할 일 하겠습니다. 대신, 다음에 백록담은 보게 해주세요.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우진해장국을 골랐다. 올해는 운 좀 풀리기를 바라며 뜨끈한 고사리 육개장을 입에 넣었다. 아직 운은 몰라도 몸은 좀 풀렸다. 해장하러 많이들 온다는데, 한라산이 생각났다. 진짜 한라산 말고, 소주 한라산. 고소하고 짭조름한 건더기와 함께 퍼먹은 밥이 입안 가득 찼다. 맛있었다.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