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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
<행운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
평생 어떻게 하면 행운의 주인공이 될지 고민해왔다.
그런데 지금 복권 당첨 같은 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사실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이건 내가 선망해온 것들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 한끗, 그 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는 시도다.
왜 나는 그럼 노력이 아닌 운에 대해 얘기하려는 걸까? 자타공인, 나는 꾸준하게 운이 좋지 못했다. 딱 하나만 더 맞혀줬으면, 단 한번만 잘 됐으면 하는 순간에 나는 번번이 미끄러졌다.
새삼스럽게 그 순간들마다 많이 괴로워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억울한 마음만 들었다.
어쩌다보니 나는 끊임없이 같은 패턴으로 내 운을 시험했다. 객관식 시험이라는 흔하고도 단순한 방법으로. 확실한 중산층으로의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여지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모든 것은 노력과 능력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강사가 정리해주는 대로 주워먹는 공부, 노력의 양이 압도적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심어졌다.
그렇게 나의 삶은 끊임없는 시험과 경쟁의 연속이었고, 그 단순한 서바이벌 게임의 반복이 내게 세상에 요행은 없다는 걸 알려줬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체득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깨닫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입시가 끝나도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었다. 학과 공부가 맞지 않아서 겉돌던 내게, 다른 시험에 합격한 선배가 자신이 본 시험을 권했다. 그전까지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분야였다. 학과에서 많이 준비하는 시험 보다는 내가 추구하는 삶과 닮아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발들인 곳이 하필 또 레드 오션이었다. ‘이 쯤하면 되겠지’ 싶은 해에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 다시 반복되는 나의 패턴. 찍은 거 중에 딱 한 개만 맞아주지, 하나를 안 맞냐… 그 다음 해는 여러모로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 마지막 기회였다. 정말 간절해서 엄마가 사준 부적도 지갑에 넣어 다녔다. 그런 영적인 물건을 믿거나 가까이 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부적 쓴 사람 말로는 내가 시험 본 해의 운이 마지막이라고 했고, 거짓말 같이 그 해에 결판이 났다. 합격이었다.
그해는 그 전 보다도 더 필사적이었고, 뭐라도 부정을 부를 수 있는 일은 피하려고 했다. 쓰고 보니 주술적인 뉘앙스마저 보이지만, 사실은 생활 태도가 달라졌다는 게 요점이다. 아마 평생에 걸쳐 큰 업적을 이뤄내서 행운의 주인공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런 마음가짐을 인생 내내 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루틴과 징크스 관리에 철저한 여러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짧은 겨우 얼마간 그 마음을 잠시 체험해봤지만 그 사람들은 수십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시험에 운을 다 써버렸다는 생각이 들만큼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나의 운은 다시 초기화된 것 같았다. 사내에서 유명한 폭탄들과 끊임없이 같은 팀이었고, 내가 맡은 업무에서는 꼭 전부터 오랫동안 미뤄왔던 문제가 터졌다. 첫 발령부터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많이 배우고 사람도 챙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시험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그날 좀더 재수가 좋기를 바랐는데 이제부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본부에 자리가 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치 없이 함부로 뛰어들었다간 혼자만 바보 되는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선호 부서라서 생기는 자리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입사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업무가 있는 곳이었다. 역시나 지원자가 없어서 옮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옮긴 뒤로도 내가 해보고싶었던 일이라 그런지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여전히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다.
그 후로도 대외적인 '비선호 부서'를 전전했다. 그래도 나름 취향껏 선택한 곳이었다. 나는 이 조직과는 좀 다른 인간임을 알게 됐다. 어찌 보면 그건 운이 아닐까? 남들이 탐내는 것과 방향이 다르다는 건 경쟁 사회에서 좀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거니까. 그런 생각이 들때 쯤 승진을 했고, 이번에도 원하는 부서로 지원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부서로 발령이 났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비선호 부서라서 당연히 갈줄 알았다. 후에 알고보니 다른 사람들도 속으로 "왜 저런데 지원하지? 당연히 가겠네"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았으며, 가장 긴장도가 높고 보수적인 부서로 발령이 났다. 또 세상 억울했다. 이젠 웃기지도 않게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렇게 딱 질색이라고 생각했던 새 업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뭐, 그렇다고 퇴사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또 해보니깐 이런 일도 괜찮네?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조직의 흐름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기점이 찾아왔다. 앞으로 남은 직장생활 동안 운이 얼마나 많이 작용할지 가늠할 수도 없다. 이 안에서 나는 스트레스에 아주 취약한 인간이 되었다가, 지금은 또 새롭게 주어지는 과제에 녹아드는 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생활 보다는 조금 더 길게 갈 인생에서도 똑같이 생각하려고 한다.
나와는 절대 안맞는다고 생각한 일이 해보니 제법 잘할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하고, 이제껏 성공해온 일보다 경쟁률이 낮다고 방심하다가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어쩌다 잘 맞는 직원들과 한 팀에 있게 되는 기간 동안은 매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낸다. ‘아, 지금이 호시절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면서. 대인기피증 있는 내가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맥주 한 잔 하러갈 수도 있다.(코로나 이후에도 따로 보는 사이는 찐이다. 정말)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작은 행운들의 작용을 느끼는 순간, 나는 바로 행운의 주인공이다.
(13.9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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