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행운을 모르는 제가, 행운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최종본)
[ 역설적인 행운 ]
그날은 13일의 금요일이었습니다.
사출기란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출기는 조각난 플라스틱을 압축하며 녹인 뒤 금형(틀) 안에 넣어 원하는 모양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계입니다. 흔히 '물건을 찍어낸다'고 하는 그 기계죠. 저는 바로 이 사출기 때문에 손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습니다.
열정이 과했던 걸까요.
그저 열심히 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 보니 손가락은 이미 기계에 처참하게 짓눌려 있었습니다. 움푹 파인 장갑 너머 어렴풋이 느껴지는 두 조각이 된 손가락.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작열감을 느끼며 저는 단박에 생각했습니다. '아, 나 손가락 절단됐구나.'
잔뜩 겁에 질린 채 응급 처치를 받았습니다. 장갑을 벗기면 바닥에 '툭' 떨어진 손가락을 마주할 것 같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잘라낸 장갑 속 손가락은 고이 붙어 있었습니다. 쥐난 발가락을 만지듯 아무런 감각이 없고 회색빛이던 손가락이었지만, 그저 붙어있단 사실에 안도의 마음만 들었죠.
"뼈가 노출돼서 감염됐을 것 같아요. 손가락이 붙어 있기는 한데... 절단도 고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겨우 안정되었던 제 마음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멀쩡하게 잘 움직이던 신체 일부를 하루 아침에 잃는다는 것. 아니, 단 3초 만에 잃을 수 있단 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래도 걱정과 달리 접합 수술로 유명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응급 처치가 잘 된 덕분에 절단이란 최악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신경과 혈관이 끊어지긴 했지만 으깨진 사고는 아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죠.
한 손을 못 쓴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머리 감는 데만 30분이 걸렸고, 바지 지퍼를 올리는 것도 힘에 겨웠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아침마다 어머니께서 옷을 입혀 주셔야만 했습니다. 길을 걷다 신발 끈이 풀리면 지나가시는 분께 '저기 죄송하지만...'하며 부탁해야 했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넘어질까 무서워 30분이 더 걸리는 지하철만 타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평소 오른쪽으로 돌아누워 자는 게 습관인 저에게 천장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고 자야 한다는 건 정말 고역이었죠.
덮친 데 엎친 격으로, 신체적 건강을 잃으면 필연적으로 잃게 되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심리적 건강이었죠. 몸이 좋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우울해지고 큰 것도 아닌 일들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고 후 몇 개월은 우울함과 예민함의 바다를 실컷 헤엄쳐 다녔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지?', '왜 나만 지금 이렇게 불행한 것 같지?' 원망만 가득했습니다.
꿈속에서조차 저는 수술대 위에 누워 "선생님, 저 손가락 안 잘라도 되죠? 붙어있죠?" 울며 애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반복되는 고통의 흔적과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내가 힘들 때, 나는 어떻게 풀어내는 사람인가.'
무기력 속에서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여전히 제 세상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살아가고 있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평소처럼. 그런데 저만 한곳에 머물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억울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의사인 히포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걷는 것은 최고의 약이다.'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끝도 없이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최고의 약이라던 '산책'을 자주 해보게 됐습니다.
정말, 제 인생에서 산책은 아마 이때 다 했을 겁니다.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 속이 정리되었습니다. 최악의 구렁텅이에서 완벽히 빠져나오진 못해도 잠시라도 벗어나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 기회가 되었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이전까지의 저는 그저 스트레스와 슬픔을 모두 외면하고 잠으로 잊으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순간이 제 삶의 전환점이 되었죠.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오로지 불운뿐이라 여겼던 그 일이 결국은 내면의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란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어주는 또 다른 흔적이 되었고 이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는 삶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돌이켜 보면 행운은 과거에 분명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대학교를 자퇴하겠다 했을 때도 묵묵히 지지해 주신 부모님, 별일 없어도 안부를 물으며 철없던 시절의 순수한 웃음을 짓게 해주는 친구들, 우연히 건넨 말에 지금은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는 사이가 된 동기, 외국에서 교통카드를 잃어버려 우물쭈물하던 제게 카드를 건네주었던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낯선 사람.
지금 제 삶을 가득 채운 사람들과 잊지 못하는 고마운 이들과의 인연은 우연한 반복이었고 그 우연도 돌이켜보면 제가 미처 당시엔 느끼지 못한 행운이었더군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뻔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거 당연한 소리 아냐?",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 당연한 걸 경험하기 전까진 몰랐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저에게 "행운이란 뭘까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여전히 남아 있는 제 오른손의 흔적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이렇게 답할 것 같습니다.
'행운은 늘 우리가 원하는 순간에 오지 않지만, 돌아보면 늘 내 곁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지금은 보이지 않고 미래에도 있을지 모르지만, 돌아보면 과거엔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그게 제가 아는 유일한 행운, '역설적인 행운'입니다.
(13.9매)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