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종착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맨날 일기만 쓰다가 남들과 함께 글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흥미가 생겨 시작했어요. 21일간의 습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내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해냈습니다. 저는 제 생각보다 멋진 사람이었나봐요.
첫날엔 이렇게 쓰면 되는게 맞나, 웃음거리가 되는게 아닐까 하고 많이 고민하면서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으로 글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어요. 가볍게 쓰고 제출한 뒤 다른 참가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만 너무 쉬운 마음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둘째날인지 셋째날인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갑자기 제 글이 좋아요 1위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틀 연속이나요. 말도 안돼. 생각지도 못했고 기대도 1도 안한 상황이라 심장이 뛰었어요. 글쓰는 재미가 이런거구나 싶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자랑했더니 그 다음날부터 저를 '김작가'라고 불렀어요. 말리지 않았어요.
그 뒤로부터.. 좋아요 많이 받는 글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오늘은 무조건 많이 받는다 했던 글이 인기가 하나도 없는 모습을 보고 글쓰기를 때려치고 싶었습니다. 왜 다들 내 글을 몰라봐주나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좋아요 많이 받은 글 보다 내가 더 잘 쓴것 같다고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김작가라고 부르는 짓은 당장 멈추라고 했습니다.
2주차부터 미션 제출시간이 점점 늦어졌습니다. 숙제처럼 미루다 마감 2시간 전에 미션을 확인했고 후다닥 제출했습니다. 좋아요 수를 안 보기 시작했고 다른 참가자가 쓴 글도 잘 안 읽었어요. 그러다 문득, 이런 제가 웃겼습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21일간 글쓰기 할 수 있나 싶어서 신청한거면서 왜 이러지 싶었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남들이 읽는 글을 썼다고, 일기장에만 쓰던 내 글을 남들이 읽어주면 감사한거지 좋아요에 왜 집착하나, 이게 뭐하는건가 싶었어요.
다시 차분히 참가자들의 글을 모조리 읽었습니다. 미션을 진지하게 대하는지, 대충 하고 치우는지 티가 나더라구요. 제 글에도 티가 났겠다 싶어 민망했습니다. 다시금 진지하게 미션을 완수하려고 노력했어요. 좀 더 적극적으로 모각글을 활용하고 싶어 피드에 글도 써보고 댓글도 많이 달아봤어요. 하루는 알딸딸하게 취한 채 댓글을 단 적이 있습니다. 글쓴이가 힘들어보였고 너무 응원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쓴 댓글을 다시 볼 수 없어 뭐라고 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진심을 담아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자기 전 모각글에 들어와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고, 내 글에 달린 댓글을 보는 시간들이 참 좋았습니다. 제 글에 달아준 댓글에 큰 위로를 받는 절 보며 모각글 참여하길 참 잘했다 싶었어요.
21일 동안 익명이 주는 힘이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걸 느꼈고 동시에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알고 싶기도 했습니다. 글 뒤에 숨어 쓰고 싶다가도 나야! 하고 나타나고 싶기도 했습니다. 서로 칭찬하고 응원해주는게 낯간지러운 소리로 치부되는 요즘, 익명에 기대 마음껏 응원해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다같이 힘든 사회에서 내 속이야기를 안하게 되는 요즘, 익명에 숨어 마음 편히 내 이야기를 떠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속 시원한 시간이었어요.
얼만큼 성장한지 잘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문장을 짧게 쓰려고 노력하는걸 보니 정말 한뼘 정도는 성장한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계속 하려면 이 정도의 정성과 노력은 쏟아야겠구나 싶네요. 새삼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오늘이 왔네요.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해본게 처음이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시킨 크리스가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습니다. 크리스, 진심을 담아 감사합니다. 재밌었어요. 아직 글쓰기 실력이 부족해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어 죄송해요. 그럼 이만 마지막으로 꼭 써보고 싶었던 말을 익명에 숨어 남겨요. 여러분 크리스의 보조개에 치얼스.
(9.7매)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