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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지
헛헛하다. 텅 빈 것 같은 마음으로 언제나처럼 책상 앞에 앉아 흰 화면을 바라본다. 지치고 버거워 영원같이 느껴지던 날들도 꽤나 있었는데, 마음이 왜 이렇지? 글쓰기를 향한 내 마음은 어쩌면 사랑과 같을까. 수없이 치고 박고 싸워 어느 날은 꼴도 보기 싫다가, 또 돌아서면 그립다. 습관처럼 찾게 된다. 곁에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아니, 잃어보질 않아 살 수 없는진 모르겠지만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를 살게 한다.
모각글 시즌4를 신청한 시기는 무기력의 늪에 빠져 발버둥치던 때였다. 힘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정말 그 어느 것도 실행할 에너지가 내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 새벽도 마찬가지였다. 형체 없는 우울과 불안, 무력감에 휩쓸려 하릴없이 폰만 보며 누워 있었다. 의미 없이 인스타 스크롤을 내리다가, 우연히 유락이라는 카페 소개글을 접했다. 타고 들어간 계정에는 숱한 프로젝트들이 스스로를 뽐내고 있었다. 그중, ‘글쓰실 분 찾습니다.’라는 썸네일이 온몸의 신경을 자극했다. 도파민과 비슷한 류의 자극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멈춰 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가슴이 뜨거워졌으며,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다는 위기감까지 엄습했다. 깊고 진한 무기력감 속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한 밤 더 고민하다 내일이 밝자마자 신청했다.
처음 사흘 정도는 정말 재밌었다. 글을 쓰며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해방감,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과정이 충만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일주일, 열흘…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맑은 감정에 무뎌졌고, 매일의 마감 임박 속에 지쳐갔다. 때로는 지금 내가 삶의 체험 현장-작가 편을 찍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 주엔 하루 중 두세 시간을 온전히 할애하던 내가 어느 날은 한 시간, 어느 날은 30분 만에 글을 뚝딱 지어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두세 시간씩 열정을 불태우던 때는 행복했는데… 글에 정성을 담지 못할수록, 내 글에 대한 애정도 줄어들었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뇌와 성찰을 하긴 커녕, 오타 점검도 하지 못한 채 마감 시간에 맞춰 후다닥 쓰고 내버리는 글. 그렇게 제출한 글은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탓일까. 나의 최선이 담기지 않은 글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묘하게도, 더 잘 쓰고픈 욕심에 스스로를 채찍질할수록, 글에 대한 애착이 짙어짐을 배웠다.
모각글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나와 조금 더 친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하루 하루 삶에 멱살 잡혀 끌려갔었다. 하루 24시간을 내가 이끌며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나를 맡긴 채 주도권 없는 하루를 살았다. 모각글과 함께한 지난 21일 동안, 하루에 30분일지라도 나와의 대화 시간을 꼭 가지게 됐다.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기며,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살피며 적은 글들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돼 주었다. 미션이 없는 내일을 생각하면 벌써 허전하다. 요 며칠 온전한 쉼을 갖고 나서 다시 글을 써야지. 이제는 없으면 허전한 내 삶의 일부가 된 글. 앞으로도 놓지 않을 테니, 친하게 지내자 우리.
모두 긴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함께 걸어가는 여러분들이 있어,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어요. 다디 단 댓글들, 따스한 말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짧고도 긴 여정의 끝, 모두 편안한 밤, 평안한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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