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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올해 칠순을 맞은 카밀 할아버지. 그는 대학 시절 시력을 잃었다. 취미는 여전히 독서다. 하지만 책을 읽기 어렵다. 책을 읽을 시력도, 돈도, 읽어줄 가족도 없다. 어느 날 집 근처 서점에서 점자책을 판다는 이야길 듣는다. 점자책 값을 벌기 위해 나간다. 흰 지팡이를 질질 끌고 힘겹게 걷는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파리 시내의 거리. “나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 언젠가 겨우 쓴 팻말을 옆에 놓는다.

웅성웅성. 멀리서 말소리는 간간이 들린다. 눈을 반쯤 뜨고 청각을 곤두세워본다. 돈이 떨어지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렇게 1시간, 2시간, 3시간…. 집에 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또각또각. 누가 온다. 직감적으로 느낀다. 이건 나에게 오는 소리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갑자기 들고 있던 팻말을 뺏는다. 뭘 쓰는 것 같더니 다시 돌려준다.

그 후로 터벅터벅. 짤랑짤랑. 사람들이 지나간다. 자신 앞에 동전이 계속 떨어진다. 느낌이 범상치 않다. 몇 시간 뒤 다시 또각또각 소리가 들린다. 그 구두다. 멈춘다. 구두를 짚고 묻는다. “내 종이판에 뭐라고 썼나요?” “뜻은 같지만, 다른 말들로 썼어요.” 고맙다곤 했지만 뭔지 짐작도 안 된다. 골똘히 생각한다.

기자 에밀리는 이 모든 상황을 맞은편 카페에서 지켜봤다. 고민하다 카밀에게 간다. 팻말에 바뀐 말을 알려준다.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리고 난 그걸 볼 수 없네요.” 그러고 이를 기사로 쓴다. 다음 날 신문 1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표현의 힘’.

(3.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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