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린다. 신경을 안쓰려고 해도 뭔가가 잡아당기는 것 같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그를 본다. 엄밀히 말하면 본다기보다 느낀다에 가깝다. 그 사람은 늘 같은 자리에 바위처럼 앉아있다. 그래서 오히려 배경이 된다. 사람들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간다. 가끔 누군가가 그에게 동전을 던진다. 그 얼마안되는 동전을 그는 냉큼 주머니 안에 넣는다. 머시는 지난 2년동안 그 앞을지나쳤다.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후 세상이 활기를 되찾아 가던 시기에는 그의 수입도 나빠보이지 않았다. 요즘들어 사람들은 멀찍이서 그를 지나친다. 그의 초조함이 머시에게 전달되기 시작할 즈음 그녀는 더이상 참기 어려워졌다. 그녀가 애써 피하고 있었던 바로 그것, 책임감 같은게 올라왔다.
사람들은 머시의 예민함을 눈치채지 못한다. 선글라스에 블랙 슈트와 검은 구두만 고집하는 그녀를 보고 확고한 스타일이 있다고 평가할 뿐이다. 시각적 자극이라도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이 스타일이라니 그녀는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머시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사에 무심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도무지 피할 수없는 자극이 생겼다. 그게 그다.
하루 두번씩 2년 동안 그의 앞을 지나치면서도 머시는 그에게 동전 하나 준 적이 없다. 이건 머시답지 않는 일이다. 그는 그녀의 신경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그래서 냉정해야 한다고 머시는 생각했다. 그는 그녀가 겨우 탈출한 뉴욕 빈민가의 상징같았다. 머시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하고 일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런 그녀를 별종처럼 대했다. 그러면서도 오래 그녀에게 경제적 도움을 바랬다. 머시는 그때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머시는 습관처럼 그를 돕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그가 시설대신 길위의 삶을 선택한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게 그녀의 신념이었다. 머시는 더이상 다른 사람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않았다. 너무 많은 삶에 관여했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촛점잃은 그의 애절한 눈빛이 오늘 따라 강렬하다. 도와줄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결국 머시는 항복하고 만다. 지난 5년간 마케팅 부서에서 구르며 그녀가 배운건 무의식과 본능이 사람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 '약함'을 그는 이미 가졌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를 도와야 할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모두를 도울 수는 없기때문에 시선을 피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머시는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그의 문장에 공감을 부르는 주문같은 문장을 써내려갔다. 그를 알게되고 1년쯤 되었을 때 생각해 둔 것이다. 머시는 이 날을 기다린 사람처럼 단번에 문장을 갈겨쓰고 출근을 서둘렀다.
그는 머시가 다가왔을 때 발자국 소리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소리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매일 들리는 똑같은 발자국 소리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같은 구두만 신고 다니는 사람은 흔하지 않아서 기억하기 쉬웠다. 스타일이 되어버린 궁여지책이 머시를 특별하게 만든 셈이다. 그녀가 다가왔을 때 그는 구두를 만지며 모양을 기억해 두었다. 그는 머시가 궁금했다. 한결같은 소리와 속도로 매일 그의 앞을 지나치던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 그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대체 무엇을 쓴걸까. 그녀의 문장이 그에게는 들리지 않아서 침묵과 같았다. 갑자기 동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른채 그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행운을 주워 담았다. 도대체 뭣때문에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을까. 그는 머시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자 머시는 그를 다시 찾아왔다. 확인할게 있어서다. 그도 확인할 것이 있다. 그가 머시가 쓴 문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문장을 읽어준다. 그에게는 뜻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두 세계의 격차가 이해를 가로막았다. 머시는 문장으로 창을 만들었다고 그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를 보이게 했다고 알려주었다. 머시는 이제 한동안 그녀가 원하던 대로 무심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머시덕분에 그는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창으로 둘은 각자 원하던 것을 얻었다. 그녀는 확인했고 그는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