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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James teacher.
12살 무렵, 나의 키는 165를 훌쩍 넘었다.
또래보다 빠른 발달로, 친구들의 손가락질을 견뎌야했다. 거인이라했다. 모두들, 그리고 나조차도 나에게.

그때 당시, James teacher은 학생과 교환일기를 썼다. 내 일기는 온통 투덜거리는 거인 이야기 뿐이였다. 교환일기의 마지막 장, 선생님이 남겨주신 단 하나의 코멘트가 있었다.

“높은 나무만이 큰 꿈을 꾼단다.
뜻은 같지만, 다른 말로 바꿔보렴. 너의 인생을 런웨이처럼 당당히 걸어라.”

런웨이라. 이 말에서 힌트를 얻어 그날 나는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바로, 모델.
벌써 23년 전, 일이다. 이젠 모델일도 후배들에게 양보해야되는 순간들이 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무엇을 하며 살아볼까, 생각하며 걷던 와중 또 다시 선생님을 만났다. 조금 다른 모습을 한 선생님을.

덥수룩한 머리에 축 쳐진 옷가지를 입고 두칸 남짓한 길바닥에 자리를 잡은 모습.
박스 종이판에 서툴게 적은 “나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 라는 글자.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짤랑거리는 동전소리.

그의 충격적인 모습에,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며 길거리를 배회했다. 다른 잡다한 말은 필요 없었다. 우리의 시간은 묻어두고 그의 앞으로의 시간을 위하여 도움을 줘아만 했다. 오로지 도움을 받았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나는 누구보다도 그에게 당당히 걸어갔다.
또각.또각.
마치 런웨이처럼.

그는 나의 구두를 매만졌다.
나는, 박스에 적힌 글자를 바꿨다.
“아름다운 날이에요. 그리고 난 그걸 볼 수가 없네요.”


이튿 날, 그에게 같은 걸음으로 다시 찾아갔다.
그는 여전히 나의 구두를 매만졌다.
깡통을 보니 짤랑이들이 꽤나 모였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내 종이판에 뭐라고 썼나요?”

“뜻은 같지만, 다른 말들로 썼어요.”

선생님이 해줬던 말 그대로를 다시 베풀었다.
그는 나를 기억할까?

(4.8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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