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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고층 빌딩이 촘촘하게 이어져있다. 그탓에 이 거리는 영롱한 빛 하나 제대로 낄 틈이 하나 없는데, 덕분에 도시 전체가 마치 간척 사업에 말라버린 갯벌처럼 보도 블록은 부식되고 쩍쩍 갈라졌으며,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제방 탓에 물길이 해안까지 닿지 못하는 바람에 입을 쩍 열고 부패해버린 조개 속살의 구린내 같은 악취가 하수구 곳곳에서 올라온 지가 오래다. 계단 모서리 사이 사이는 쥐가 다니는 지 구멍이 조그맣게 뚫려있고 그 옆으로 곰팡이들이 시커멓게 점령한 채 언제든 자신의 몸집을 키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층 빌딩은 대부분 관공서나, 은행, 회사들이 밀집해있는 탓에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특정 시간마다 거리를 채웠는데, 기자 출신인 '정수'도 그 인파 속에 있었다. 짬을 좀 먹은 선임들은 "야, 새끼야. 이 퀴퀴한 냄새가 네 셔츠에 제대로 배야지 '얘기'가 좀 되지 않겠냐?"며 선대로부터 내려온 멸시적 농담을 동태의 눈알을 한 신입 '정수'에게 그대로 내다 꽂으며 과시적인 태도를 취했고. '정수'는 이 말을 듣고도 그저 웃는 것 말고는 딱히 적절한 방도가 없었는데, 해가 한 번 돌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과는 '얘기'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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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상권 내에 있는 카페의 점심은 긴장 그 자체다. 먼저 원두에 이상이 있는지 눈과 코를 사용해 관능적으로 체크한다. 능숙한 바리스타는 손님들의 니즈를 확실하고 정확하게 뚫어낼 비장의 총알을 일발 장전하고, 전쟁통에 있을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물자는 꼼꼼하게 체크한 뒤, 부족한 물자는 신속하고 재빠르게 보급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한다. 그 외에도 적재적소에 꺼내쓸 수 있도록 손을 뻗었을 때의 미세한 거리감 또한 연산하고 가지런히 장비들을 정렬한다.

전투 준비가 마무리되면 '순임'은 보통 레시피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숙련된 바리스타는 기계처럼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다하고 잠시 숨을 고르지만, 실수를 연발하는 초보 바리스타 '순임'은 "오늘은 실수 없이 해봐야지."하며 주먹을 꽉 지고 머릿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정보를 욱여 넣느라 여념이 없다. "순임씨 여기 좀 보시겠어요?" 선임 바리스타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생크림이 벽 쪽에 몇 자국 튀어 있었는데 그것을 보며 "순임씨는 인간 자체가 비위생적인 것 같은데요?"라고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순임의 꽉 진 주먹은 식은땀에 가득 차버린 나머지 미끄러졌고, 이내 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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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와 '순임'은 각자의 터에서 바쁘게 자리하다, 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저 멀리 창 밖을 보고는 했는데, 빌딩 숲 한중간에 앉아있는 장님을 구경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둘은 딱히 그에게 연민의 감정은 없었기에 '눈이 보이지 않는 자'의 혼돈 속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눈이 보이는 자'가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기만 또는 책임 없이 즐겨보는 사치라고 생각했으며. 바지 주머니에서 자꾸만 짤랑거려 신경이 거슬리는 동전도 냅다 던져 주기엔 매일 욕이나 처먹어대는 자신의 처지 또한 장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넘기는 것 내지는 욕을 진탕 먹은 날 "그래, 저 것 보다야 낫지."하며 정신 승리 용도로 사용하고는 했다. 그 와중에도 둘은 매일같이 똑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에 '사실은 눈이 보이는게 아닐까'하는 호기심이나 있을 뿐이었다.

(8.4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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