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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한 사내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다. 바닥마저 비에 젖었다. 깔고 앉은 폐박스 한 장으로는 이 겨울을 날 수 없을 것이다. 더 내려갈 곳 없는 상황을 비난이라도 하듯 사내는 계단 앞에 자리잡았다. 꺼진 아스팔트 곳곳엔 빗물이 고여 있다. 사내를 비웃기라도 하듯 웅덩이에 비친 하늘은 유난히 청명했다.
사내는 눈을 내리깔았다. 며칠만에 개인 하늘이었으나 볼 수 없어 지나친 듯했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자 사내가 허공에 대고 고개인사를 한다. 더듬거리는 손에 동전 하나가 잡힌다. 사내 곁을 지키는 건 작은 깡통과 글씨가 쓰인 박스 조각뿐이었다.

'나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

'찰캉.' 사내는 동전을 집어 깡통에 소중히 담았다. 깡통을 앉은다리 옆에다 끌어당겨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전 하나에 사내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걸 볼 수 없네요."

사내의 옆에서 누군가 읊조렸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말은 바람소리를 타고 흩어져 갔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 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2.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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