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종착지

Write Yours! 일명 책 한 권 쓰기 코스. 초반 일주일은 순탄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쓰고 싶은가를 정하고 나서.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책의 기획서도 일단은 거창하게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엔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그게 내 일이라도 말입니다. 초고 쓰는 일이 시작되자 '내 일'은 '남의 일'이 되었습니다. 초고 1, 2, 3, 4, 5...  분명 내 것으로 남을 텐데 남의 일을 대신하는 것처럼 버겁고 왠지 화도 났습니다. 에세이 초고를 하루에 하나씩 써야 한다니! 이걸 어떻게 하냐고!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고, 머리가 안 돌아갔습니다. 머리가 좀 돌아간다 싶으면 마감 시간이 임박해 있었습니다.

매일 미션이 주어지던 지난 시즌이 그리워졌습니다. 주어진 미션에 맞추어 글을 쓰던 날들이, 입 벌리고 먹이만 받아 먹는 아기 새 시절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미를 잃은 아기 새의 기분이 이런 걸까요? 같은 소재로 매일 다른 글을 써야 하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마치 글을 처음 써보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쓰고 싶은 말은 어제, 그저께, 엊그제 이미 소진되고 없었습니다. 그렇게 완판(?)의 날과 매일 씨름했습니다.

결국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써지면 써지는 만큼만 썼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글들이 쌓여갔지만 어쨌든 첫 삽을 떴으니 뒷부분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앞으로 주어지는 기간 동안, 미완성의 날들을 완성의 날로 바꿔 나가야겠지요.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요. 미완성의 글이라도 제출한 덕분에, 이렇게 마지막 날까지 살아남아 후기를 쓰고 있다는 겁니다.

좀 부족해도 좀 모자라도 일단은 쓰는 것. 이번 모각글은 '모여서 각자 글쓰기'이기도 했지만 '모자라도 각 잡고 글쓰기'이기도 했습니다. 어렵게 살아남은 만큼 유난히 달콤한 21일차네요. 어찌 됐든 많이 행복합니다.

(4.7매)

0

0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