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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훔치기
정확한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목적지 또한 정하지 않았다. 편히 만나 어디론가 떠나자는 목적 하나뿐이었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 느지막이 일어나 이제 출발하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만나기는 했으니 다행인 건지, 일단 출발은 했지만 여전히 어디로 떠날지는 모른다. 그제야 토론을 시작했다.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 적당히 사람들이 있고, 낮은 건물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 경주, 아 경주 좋다.
친구의 친구로 맺어진 사이. 그리 멀지도, 그렇다기엔 엄청나게 가깝지도 않은 그런 사이. 때로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지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경주로 떠났다. 날씨 앱에선 흐리다고 했는데 꽤나 쨍쨍했다. 가을이 되고 해가 짧아져서 햇빛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는 등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어여삐 물든 단풍과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쾌청하고 드높은 하늘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넓은 벌판으로 갈까. 잔디에 누워 읽어볼까. 무엇이든 좋았고 어떤 이유를 덧붙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디론가 떠나기 전 챙기는 책과 시집이 손에 잡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르게 편히 앉기도, 눕기도 하며 빠져들었다. 활자로 전해지는 물성, 산책하는 연인, 까르륵 웃는 학생들까지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존재한 적당한 거리의 이방인은 어느새 울타리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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