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박카스

카페인은 몸에서 안 받는데 알코올은 잘 받는다. 그리하여 박카스 대신 살얼음 낀 생맥주잔 같은 걸 건네본다.
재밌잖아? 한 잔 해.

회사에 다닐 때 '어쩌겠어, 해야지'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니까 (하기 싫어도)가 숨겨진 문장이다. 종일 소모된 채 겨우 술집으로 향한다. 한 잔, 두 잔, 찌푸렸던 미간은 펴지고 얼굴은 해실거린다. 맛있고 재밌는, 원초적 욕망을 좇다보면 고통은 희미해진다.

아직은 취미인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시작했고, 여전히 하고 싶어 한다. 못 쓰면 급여가 깎이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비난 받지도 않는다. 모든 감정은 나로부터. 읽고 기립박수를 쳤다가, 이딴 걸 글이라고 썼냐고 내동댕이친다. 미안한 마음에 고쳐주는 날이 있는가 하면, 꼴도 보기 싫어 쓰다만 채 노트북 폴더 속에 처박아버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왜 쓰느냐. <헤세의 문장론>에서 헤르만 헤세는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라 했다. 쓸 때의 행복함을 말하는 작가는 또 있다. <카프카 평전>에서는 카프카가 창작과정의 망아적 순간이 주는 희열감에 취하곤 했다고 전한다.

어디 내놓아도 부끄러운 내 자식이지만, 또 내 새끼만큼 예쁜 게 없다. 안 예쁘면 어떤가, 뭔가를 쓰겠다고 자세를 잡고 앉기만 해도 호르몬이 대동해주는데. 써 내려가며 드는 자괴감과 분노는 여느 콘텐츠보다 자극적이다. 쓰는 와중에는 기쁜 상황을 자각하기는 어렵다. 지나서야 끙끙 대며 몰입했던 자신이 보인다. 쓰는데 괴로운 이유는 쓰기 싫어서가 아니다. 잘 쓰고 싶어서다. 조금만 더 참아 본다. 롤러코스터가 내리꽂는 자극을 위해서라면 덜컹덜컹 올라가는 시간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

마침 매일 쓰기 쉽지 않다고 체감 중이었다. 연이은 글쓰기 실습에 조금 지쳤는데, 들킨 것 같아 머쓱하다. 절대 경험을 떠올린다. 고된 업무 후에 마시는 맥주가 제일 맛있다. 쓴 글이 쌓이고 MY 카테고리에서 100%찬 바를 본다면 탄산에 몸서리칠 것이라며, 오늘 과제도 제출한다.

(5.0매)

4

0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