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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요즘 드는 생각 하나.
나는 대체 왜 잘 하던 일 다 때려치고 이러고 있나. 세상에는 잘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전공자, 수상자들도 전업작가로 먹고 살기 어렵다는데 내가 뭐라고 겁없이 이 길로 뛰어 들었나.
이어지는 생각하나.
나는 창작을 좋아하지만 그걸 다듬어 세상에 내어놓는 일을 피하고 있다. 달콤함에 취해 재미있는 일만 하고 힘든 후반작업을 지속적으로 미룬다.
다시 피어나는 생각하나
그렇다면 그냥 취미로 할 것이지 왜 전업작가를 하려고 하는 거지? 뭐든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할 때가 제일 재밋는데. 직업이 되는 순간 좋아하는 일은 ‘현실’이 되잖아. 취미삼아 재밋게 하고 에너지를 얻으면 될 것을 대체 왜?
‘why'로 시작해 ’why'로 끝나는 무한 반복 루프에 빠지고 말았다.
“네 안에서 터져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하고 싶더라도/하지 마.
네 가슴, 마음, 입, 내장에서/ 자기도 모르게/튀어나오지 않으면
하지 마.” (찰스부코스키-작가가 되고 싶은 건가요)
언더그라운드의 계관시인, 아웃사이더 작가로 널리 알려진 찰스 부코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무엇을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 작가라면 나는 작가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때 난 글을 쓴다는 느낌보다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것을 받아적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우체국에 남아 미쳐 가느냐, 아니면 그곳을 빠져나와 작가로 살면서 굶주리느냐, 나는 굶주리는 쪽을 선택했다.” (찰스부코스키 인터뷰)
그는 전업작가가 되면 매달 100달러를 주겠다는 한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선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굶주리는 건 아니지만 돈을 한푼도 벌지 못하고 버티고 있는 지금의 상황 또한 부코스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하급노동자, 우편집배원등으로 살다 50살이 되었을때 비로소 전업작가가 되었다. 전업작가가 되고 나서 자전적 소설 ‘우체국’으로 데뷔후 60권이 넘는 소설과 시집, 산문집을 펴냈다. 부럽다.
“글쓰기란 죽이게 재미있는 게임이죠. 거절당하면 더 잘 쓰게 되니까 도움이 되고, 수락받으면 계속 쓰게 되니까 도움이 됩니다. ”
그는 게임을 하듯, 주사위를 굴리듯 글쓰기를 했다. 그는 50년 동안 거의 매일 글을 썼다.
“일주일 동안 글을 쓰지 않으면 몸이 아픕니다. 걸을 수도 없고 어지럽죠. 침대에 누워서 토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캑캑거립니다. 나는 타자를 쳐야 해요. 누가 내 손을 잘라버리면, 나는 발로 타자를 칠 겁니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늘 타자를 친다. 쓰지 않는 시간을 견디기 어렵다. 오래 쓰지 못하면 상태가 안좋아진다.
"그(글쓰기) 행위보다 더 큰 보상은 없어요. 그 후에 오는 건 그저 부차적일 뿐이요"
쓰면서 느껴지는 ’하이‘(고조되는 감정)가 있다. 이건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쾌감이 분명 존재한다. 글에 완전 몰입했을때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런 그의 묘비에는 ‘Don't try'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문학 지망생에게 그가 한 충고의 글에서 따온 문장이다.
"애쓰지 마라.(Don't try.)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노력하지 '않는' 것, 목표가 캐딜락이든 창조든 불멸이든 간에 말이다. 기다려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좀 더 기다려라. 그건 벽 높은 데 있는 벌레 같은 거다. 그게 너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려라. 그러다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팔을 쭉 뻗어 탁 쳐서 죽이는 거다. 혹시 그 생김새가 마음에 든다면 애완용으로 삼든지"
요즘처럼 글이 안풀릴때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 기다리면 언젠가 온다. 제발 빨리와라. 뭐 그런 심정이다.
부코스키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저주받은 삶이라 여기면서도 수많은 글을 쓰고 또 썼다. 오늘 과제를 받자마자 그를 떠올린 건
‘망할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라는 그의 시집때문이다. 처음 이 시집을 집어들었을 때는 그저 문장이 재밋어서였다. 한참 후 다시 이 시집을 펼쳐보았을 때는 정말 딱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이도저도 아닌 삶을 살고 있는 내 상황이 짜증나서였다. 쓰고 쓰고 또 써도 글은 더디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이 저 높은 곳을 날아다니고 있는데 내 글은 꿈틀꿈틀 겨우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아직도 쓰고 있는 걸까.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에서 플라멩코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심경을 위하여 추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지. 견딜 수 없어서 터져나오는 것이지. 터져나오는 것을 어떻게 막는가 말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유일한 길이고 ...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가의 문제다.” (찰스 부코스키, 글쓰기에 대하여)
플라멩코 댄서들도 부코스키도 터져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형제여, 믿음이란/신이 아니라/당신 자신을 /믿는 거라네. 묻지 말고/ 말하게나.( 찰스 부코스키의 시 용맹한 독수리에서)
부코스키에게 글쓰기는 ‘그것말고 다른 것은 할 수 없음’이었다. 그는 자신을 믿으며 내면으로부터 터져나오것을 타자기로 찍어내려갔다. 망할놈의 예술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말이다. 글쓰기는 글의 선택을 받은 사람의 숙명인 것이다. 글이 나를 떠날때까지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거였다. 그러니 그가 했던 것 처럼 주사위를 굴리고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터져나오는 글들을 막을 수 없다. 남은 건 쓰고 쓰고 쓰고 또 쓰는 것 뿐.
끝까지 가라 (roll the dice)- 찰스 부코스키
시도하려면, 끝까지 가라.
아니면,
시작조차 말아라.
(If you're going to try, go all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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