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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청와대 생활이란 게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오늘도 무사히'란 구호는 택시 기사님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연설비서관실은 더욱 그러하다. 하루에 평균 두세 개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는 대통령. 이 모든 일정에는 말과 글이 따른다. 여기에 영부인 말과 글까지 연설비서관실의 몫이다."

글쓰기 초짜 시절. (사실 지금도 초짜다) 선배 하나의 추천을 받고 참고한 책이 있다.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8년간 연설비서관을 역임한 '고수'다.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담당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글을 썼다. 글쓰기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런 그에게도 과정이 다 있었다.

강원국은 원래 글쓰기 젬병이었다. 대학 때는 시험 답안을 쓸 때 말곤 글을 써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기자가 되려 했지만 당연히 시험에 떨어졌다. 미련을 갖고 대우증권의 홍보실을 자원했다. 신문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 어쩌다 20주년 사사(社史)를 만드는 일이 주어졌다. 겉만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얼떨결에 '글 잘 쓰는 사람'이 됐다. 그렇게 회장의 연설문 작성을 보좌하는 일을 하게 됐다. 그 인연으로 대통령 연설비서관에 합류했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글에 관한 한 욕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이 정도면 됐다'가 없었다고. 대통령의 욕심은 바로 무엇을 쓸 것인가의 고민이다. 그것이 곧 국민에게 밝히는 자신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연설문을 출력해 대통령 부속실에 올리면 김대중 대통령은 그 종이에 직접 수정했다. 바쁜 와중에도 연설문만은 꼼꼼히 챙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원국과 처음 독대한 날 두 시간 가까이 특강을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은 예의가 아니네.
  4.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대통령은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는 글쓰기의 모든 답이 들어 있었다. 그때 강원국은 다짐했단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고. 임기 5년 동안 쓴 초안에 대해 노 대통령은 '오케이'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 강원국도 처음부터 '고수'가 아니었다.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지금의 고수가 된 것이다. 더한 고수를 만나.

(6.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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