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정하기

박카스

[업(業)이 되면 피바다가 된다]

유유적적, 새하얀 노트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투박한 연필 한자루를 무기 삼아 사는 삶 말이다. 바닷길이나 걷고 조금 질리면 산 속에 파묻혀 지저귀는 새들과 대화하며 필력을 뽐내는 삶 말이다.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였다니까. 나는 글솜씨를 가졌으니 자연 속에 파묻혀 화려하게 뽐내 보아야될 것 아닌가.

그런데 나의 알량한 글솜씨는 기여코 숨겨지도 않아서 자연이 아닌 현실에서 꾸역꾸역 먹고 사는 정도가 되었다지. 누구는 그러더라. 그만한 일 없다고. 잘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고. 내가 피바다에서 헤엄치는 줄은 모르는 거지.

나는 글을 미치도록 못살게 군다. 쓸 때 만족하더라도 돌아서면 고치고 있다. 내가 붉은 펜으로 고친 교정지는 “피바다”로 불린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도 인쇄할 때마다 고쳤다. 20쇄 넘게 인쇄한 책도 고쳤다. 마침내 편집자에게 사실이 틀렸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야 했다.

누구의 요청에 의해서, 혹은 나의 만족을 위해서 글은 몇 번을 굴러 깎이고, 또 깎인다. 깎이고 나면 다시 또 채운다. 채우고 나면 다시 덜어낸다. 그것을 또 2-3년 후에 열어보면, 나체가 된 것 마냥 부끄럽다.

나는 이것을 “업보“라 부른다. 그냥 나의 업에 대한 댓가 말이다. 업이 되면, 미치도록 좋아했던 일은 자리에 앉기도 싫을 만큼 싫어지는 때가 온다. 자신감이 흘러 넘치던 재능은 천재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알맹이정도로 작아진다. 그나마, 좋아하니까, 잘하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뿐이다. 업이 되면 그렇다. 지독한 피바다를 헤엄쳐 살아남는 자들만 인정 받을 뿐이다. 당신은 글쓰기로 피바다를 헤엄칠 용기가 있나?

  • “우리나라 출판계에선 한비야 작가의 고치기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그가 붉은 펜으로 고친 교정지는 ‘피바다’로 불렸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도 인쇄할 때마다 고쳤다. 20쇄 넘게 인쇄한 책도 고쳤다. 마침내 편집자에게 사실이 틀렸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손대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야 했다.”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작가

위의 일화를 제 일화와 섞어 재구성하였습니다.

(5.4매)

2

0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