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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웃
"야, 인동 원룸촌에서 대가리 하나 깨졌단다."
"곧 현장 가야되니까 대기하고."
대가리가 깨졌단다. 관리자의 전화였다. 대가리가 깨졌다는 것은 업계 내의 '은어'였다. 사람이 집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다. 그의 말에는 대가리가 깨진 것 외에 모든 내용이 결여되어 있었다. 자살일까. 타살일까. 혼자 죽었을까. 함께 죽었을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젊을까. 늙었을까. 가난 했을까. 부유 했을까. 외로운 인간이었을까. 가족이 있었을까. 아니. 만일 자살이라면,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하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다. 반복은 나의 대가리도 무던하게 만들었다.
끼긱, 끼리릭- 끼리릭-. 파란색 1톤 트럭. 노쇠한 엔진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굉음을 뱉어댔다. 마후라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고요한 골목을 질러 가며 건물 양쪽을 갈라쳤다. 나를 태워갈 트럭이었다. 나는 트럭에 올라, 곧장 글로브 박스부터 열었다. 방진 2급 마스크가 있었다. 큰일이다. 방진 2급이면 방안에서 대가리가 썩었다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썩었을까. "오늘 현장 어떻대요?"라고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알면서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썩은 것은 썩은거다. 저녁을 안 먹은 것이 다행이었다.
인동은 도시의 구색을 갖췄다. 노래방과 술집들이 즐비했다. 누구 대가리가 깨져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았다. 세상은 오늘도 술을 마셨고. 무엇을 위하는지, "위하여!"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거리의 남자들은 여자의 밤을 훔치기 위해 기회를 엿봤고, 여자들은 괜찮은 남자를 고르기 위해 저울질 해댔다. 거리에는 젊은 아가씨들이 많았다. 가슴이 무방비한 면으로 겨우 감싸져있었다. 그 주변을 머리 빠진 아저씨들이 눈을 흘기며 돌아다녔다. 나도 가슴을 보았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트럭은 조금 더 달렸다. 양 쪽 라이트를 키고, 한산한 도로를 가로질렀다. 더 이상 젊은 아가씨는 없었다. 문신이 깨나 있는 아저씨, 후드를 뒤집어쓴 마른 남자. 담배 꽁초와 대충 묶어서 버린 쓰레기들. 하수구 악취와 뜯겨진 매트리스, 점멸하는 가로등이 있었다. 이어진 원룸들은 '그린티스', '로사빌', '메르케슬' 같이. 하나같이 촌스러운 이름들만 눈에 띄었다. 고작 몇 블럭 차이로 세상이 뒤집혔다.
"내려라." 구령을 듣자마자 곧장 마스크를 썼다. 두겹을 겹쳤다. 그것이 모자라서, 마스크 안에는 손수건을 넣어뒀다.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났다. 큰 가슴을 내놓고 다니던 누나가 떠올랐다.
원룸 앞에 섰다. 마음을 다잡는다.
끼익-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을 닫았다.
선임이 장난치냐고 소리쳤다. 나도 모르게 닫은 것이었다. 악취가 심했다. 위급 상황이 발생하며, 신체의 모든 감각이 나를 보호하려 들었다. 그것은 내가 닫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센서였다. 죽은 살덩이의 악취가 미쳐 다 닫지 못 한 철문 사이로 삐져나왔다. 4층짜리 원룸의 복도가 살 썩은 냄새로 뿌옇게 변했다.
마스크 안의 손수건은 이미 기능을 잃었다. 구토 반사가 목구멍을 탁 쳤다. 울컥하고 신물이 튀어나왔으나, 간신히 넘겼다. 모르는 아저씨의 무좀 껍질과 변기에 담군 오렌지를 섞고, 시골의 썩은 거름과 함께 말린 다음 차로 우려 먹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걸로는 모자랐다. 푸세식 변기가 생각났다. 여전히 모자랐다. 창문에 붙은 청테이프부터 급하게 뜯었다. 여름 내 밀폐되어 달궈진 테이프가 눅진하게 붙었다.
대가리가 누워있던 장판은 검게 변색됐다. 대가리가 보냈던 뜨거운 여름 자리가 보였다. 살점이 장판에 들러붙어 진득하게 떨어졌다. 그 위에 구더기가 오동통하기 살을 불리며 남은 살점을 갉아먹고 있었다. 바닥 뿐만 아니었다. 벽과 천장이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고, 흐물거렸다. 발걸음을 옮기면 구더기가 터졌고, 노란즙이 튀었다.
역겨움을 꾹꾹 눌렀다. 구토 반사가 여전히 반복됐다. 센서는 제 할 일을 열심히 할 뿐이었다. 원룸을 뛰쳐나왔고, 밖에서 개웠다. 신물이 입과 콧구멍을 통해 삐져나왔다. 인두와 후두 사이를 산이 역류하며 곳곳을 깊게 찔렀다. 진득하고 끈적하게 침이 이어졌다. 투명한 국수 같았다.
역겨움은 숭고한 정신을 발가벗긴다. 원룸 안의 악취는 누가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이 따위 문제로부터의 해방을 도왔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대가리가 깨진거였고. 그 안에서 썩은거였다.
대가리는 고독사였다. 원룸 주인이 월세가 밀려 문을 땄는데, 시체가 썩어있었단다. 집주인은 "깨끗하게 좀 부탁해요."하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대가리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눌러 붙은 장판을 뜯어냈다. 가구 사이에도 구더기가 있었기에, 침대와 서랍도 뜯어서 버리란다. 나는 서랍을 버리기 전에는 항상 그 안까지 뒤져보았는데, 가끔 돈이나 보석 같은 금품이 숨겨져 있었고. 찾는 재미가 있었다. 뽀찌는 대가리가 깨져도, 역겨움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늘 달달했다. 서랍 안에는 노트가 있었다.
"2020년 새해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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