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잤다. 점심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 든든히 챙겨 먹기는 좀 그래서 간식을 찾아 나선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길에선 고수운 향이 나기 시작했다. 쌀쌀해진 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풀빵을 파는 포장마차 앞에만 북적북적한 모습이 어쩐지 귀엽다. 자주 들리는 이 풀빵 가게 라인업에 호떡이 추가됐다. 지갑 단속이 필수다. 하지만 오늘은 실패하기로 한다.

"호떡은 종이컵에 담아 주세요. 먹으면서 가려고요. "

이게 어른이 아니면 무엇이 어른이란 말인가. 두 손은 든든하고 두 볼은 빵빵하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얼굴에 선선한 바람이 닿는다. 조금 걸어 집 가까운 언덕을 넘었다. 도착할 때쯤이 되니 숨이 살짝 가빠진다. 아직은 여전한 초록이 가득하다. 시선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가을을 맞이한 하늘이 푸르다. 기척이 느껴져 시선을 돌리니 갓길에 주차된 트럭 옆에서 길고양이가 쳐다보고 있다. 풀빵이 식어가는 게 신경 쓰여도 어쩔 도리가 없다. 잠깐 시간을 내는 수밖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재빨리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선물 받은 드립백 중에 어떤 걸 마실지 고민하며 물을 끓인다. 맛에 큰 차이를 모르긴 해도 하나씩 톺아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다 손에 집히는 걸 고른다. 따뜻한 커피 향이 집안에 퍼지니 느물느물 풀어진다. 커피를 컵에 따르고 창문 앞자리에 앉는다. 풀빵 한입에 커피 한 모금. 구면인 초록과 푸르름이 창밖에서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