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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리 깨고 죽고 싶다.
나는 이방인이다. 도시는 시끄러웠다. 차들의 경적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어느 순간 그 소리들은 귀에서 멀어져 갔다. 나를 아는 사람도, 기댈 사람도 없다. 혼자라는 감각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고독은 이 도시에서 가장 익숙한 감정이었다.
대가리 깨고 죽고 싶다.
누가 그랬다.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 회사 들어간다고. 수많은 꿈과 희망을 품고 상경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 새로운 기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다.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회사는 경영 안정을 빌미로 개인의 성장 기회를 박탈했다. "더 참신한 기획안을 내 보세요." 내면 뭐하나. "우리 회사에서 추진하기엔 좀…." 기각당하기 일쑤였다. 바라는 건 쓸 데 없이 많았다. 쥐꼬리만한 봉급을 주면서도.
대가리 깨고 죽고 싶다.
도시는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야근은 필수. 주말에도 전화 오는 일상. "타인은 지옥이다"를 말하는 출퇴근 지옥철. 몇십 년 된 원룸도 70만 원의 월세를 받는다. 월급의 3분의 1이다. "문화생활도 여유가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거지…." 언젠가 친구 하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퇴근 후 맥주 한 캔을 먹는 것도 사치였다. 그럴 체력도, 정신도 없었다.
대가리 깨고 죽고 싶다.
출근길에 문득 생각한다. 내가 사라진다면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저 건물들의 회색빛은 여전히 차갑고, 광고판 속 웃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해 보이겠지. 이 거대한 세계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것이다. 사람 하나쯤 없어져도. 지하철 도어에 비친 얼굴을 본다. 대가리는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이렇게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도. 아마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이다.
터무니없지만 쉬운 방법을 택한다. 손잡이에 목을 맨다. 외로웠고, 고독했고, 고단했고, 절망했다. 이제 끝나길 빌어본다. 절망에 고통받는, 나와 같은 '난장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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