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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1984의 연락이 온 것은 0시였다. 차원사이 틈이 생기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기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살풋 잠이 들었다가 MZ 1984가 보낸 좌표를 수신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지구 시간으로 10년만의 일이다.
지구인의 몸은 불편하다. 특히 여성의 몸은 더 그래 보인다. 지구 탐사 보고서에 남성의 몸이 지구에서 지내기 더 편리하다는 점을 두페이지에 걸쳐 설명했다. 다음 번 지구 탐사원은 내가 겪었던 불편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구인의 몸은 사실 굳이 성별이 아니라도 여러모로 불편하다. 식사를 챙겨야 하고 잠도 자야하는데다 소화된 잔여물을 배출까지 해야한다. 지구상의 여러 존재들 중 인간종의 몸을 선택한 것은 그들이 지배종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여러 곳으로 이동하며 지구를 탐사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한 몸으로 이 정도의 문명을 이루다니 지구인은 놀라운 존재다. 우리 은하에서 지구에 탐사원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도 단기간에 이룬 문명에 대한 관심때문이었다.
지구 탐사대 선발대로 교육을 받을 때만해도 난 이 프로젝트가 쉬울 거라 생각했다. 딱 하루의 출장이었고 우리보다 하등한 문명이라 생각해서 였다. 문제는 우리 은하의 하루가 지구에서 10년이 이었다는 점이다. 이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지만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하루 정도의 짧은 탐사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한 지구에서 난 지난 10년간 불편한 인간의 몸으로 온갖 고생을 해왔다. 돌아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지내온 시간들이 영상저장소에 가득찼다.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을 차원이 열릴때마다 본부로 송출했다. 그 데이타를 기반으로 우리 은하는 지구에 대한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개고생하다 비로소 돌아가는 날이 되었는데 인정머리 없는 MZ1984는 하필이면 돌아가는 시간을 아침8시로 정했다. 난 지구인의 직장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1년전 한 다국적 기업에 취업했다. 쓸모없는 것들을 재생산하느라 매일 1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한달째 하고 있다. 이제 드디어 해방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날까지 오전 8시에 지하철 안에 있어야 하다니... 그나마 별로 붐비지 않는 5호선이라는 점이 다행이다.
차원의 틈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에도 지하철 안이었다. 지구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차원이 틈이 하필이면 저녁 7시 9호선 지하철 안으로 열렸다. 지구에서의 내 첫 번째 기억은 불편한 여성 인간의 몸으로 다른 인간들에게 짓눌리며 견딘 퇴근길의 9호선이었다. 1시간을 시달린 끝에 겨우 첫번째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겪게 될 지구에서의 생활을 낙관하고 있었다. 내가 간과했던 건 지구인들의 시간과 몸이었다. 첫번째 장소가 선유도가 아니었다면 다음번 차원의 틈이 열렸을때 당장 돌아가겠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온 별의 환경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며 MZ1984가 정해준 충전소가 선유도였다. 나는 한강에 몸을 담그고 지구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지구인들은 빛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밤이 되어도 빛이 여기 저기서 밝게 빛났다. 어둠이 익숙한 나는 낯설지만 밝은 지구의 밤이 좋았다. 그날 밤 난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지구에서의 탐사를 계속하기로 한것이다. 그렇게 10년의 첫날이 지나갔다.
차원의 틈이 열리길 기다리며 10년간의 지구 생활을 떠올리니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 은하의 존재들에게 감정은 생소한 것이다. 지구인의 몸을 입어서인지 언젠가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맑은 날 선유도 공원에서 노을을 바라볼 때 느꼈던 온몸의 세포들이 별처럼 빛나는 것 같은 기쁨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제 조금 지쳤다. 얼른 돌아가고 싶다. 주파수가 감지된다. 손잡이가 흔들거리며 신호를 알린다. 난 불편한 구두를 벗고 눈을 감은 뒤 손잡이을 잡았다. 손잡이 안으로 틈이 생길 거라 MZ 1984가 알려 주었다. 체중을 실어 최대한 힘을 주어 잡아 당겨야 했다. 60킬로의 무게로 당겨야 열리게 세팅되어 있다. 난 지구에서의 마지막 힘을 쓴다. 마침내 암전. 문이 열렸다. 완전한 암흑의 차원이 보인다. 틈으로 재빨리 나가며 인간의 몸을 벗어던진다. 마침내 자유다. 지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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