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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II

채용 비리란다. 도와 달라며 연락이 왔다. 친구는 4년 째, 공기업 취준생이다. 시험지를 받고, 풀고, 내고서는 곧장 항의 하러 갔단다. 이상하다고. 쉽게 말해, 한국사 시험을 치러 갔는데 세계사 시험지를 받은 꼴이라고 했다. "나중에 정식으로 항의하세요." 라는 한마디에 왈칵 쏟아진 눈물은 며칠 간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시험 전, 친구는 직업 하나를 위하여 2천만원을 주고 3년의 학교 생활을 했고, 타지에 가서 외로운 이방인을 자처 했으며, 수십번 떨어져 고배를 마셔도 죽을 때까지 마실 수 있다는 다짐을 해야 했다. 비슷한 시간을 보낸 피해자들이 모였고, 그것은 고작 10명 남짓이었다. 없는 돈 털어, 법률사무소에 가서 상담도 받고, 기사를 써달라며 애원하고 다녔다고 한다. 마침내, 나에게 도착한 기사 하나. 그리고 친구의 메세지 하나. 지인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려 달라. 미션을 받았다. 나는 TV, 라디오, SNS, 언론사를 자처했다. 이상한 시험지로 붙은 사람, 그 놈이다. 부모님의 인생에 덤으로 얹혀가는 그 놈. 괜스레 화도 났다.

며칠 뒤, 술자리를 가졌다. 위의 취준생 1명, 친구 1명, 그리고 나. 총 3명. 못본 새, 취준생 친구는 더 울분에 차 있었다. 고소를 할 것이라고 했다. 간절한 취준생의 노력을 짓밟았고, 이런 비리는 없어져야 된다며 마치 시민 운동가와 같은 우렁찬 목소리를 냈다. 그에 대해 다른 친구 한명이 말했다.
"제발 좀 가만히 있어라. 그런 일은 니가 안해도 다른 사람이 한다." 진심으로 친구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혹시나 그렇게 큰 공기업이 친구를 수소문해 블랙리스트처럼 영영 낙인 찍어 버릴까봐, 옳은 일을 했다는 소문이 일파 만파 퍼져 면접관의 눈치를 볼게 될까봐, 아니 붙어도 문제. 취업을 해서도 윗사람들 귀에 들어가 매일 아침이 지옥 같을까봐. 그러니 그런 운동가 같은 정신은 너 말고 남에게 맡기라고. 내. 친구는 외로운 가시밭 길을 걷지 말라고.

취준생 친구도 무섭다고 했다. 그 말에, 포기 하려나 싶었지만 불굴의 정신은 더욱 강해졌다. 그럼에도 본인은 아닌 것에, 아니라고 말하고 싶단다. 잘못된 일은 잘못 되었다고 말하고 싶단다.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고민이 깊어졌다. 마음은 불굴의 정신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뱉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고작 몇년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 대표와 대리의 차이, 금수저와 졸부의 차이, 벤츠와 레이의 차이, 명품과 보세의 차이, 수백가지의 차이로 우리는 평가된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서 미세하게 갑-을이 나뉘어져 보이지 않는 위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단지, 위력의 파장은 작은 을 하나 따위가 파동도 못 느낄만큼 깊고 진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10동안 함께 수 십번의 건배를 하며 울고, 웃고, 실패하고, 성공하며, 응원 했던, 취준생 친구에게 무엇을 말해야 되었을까. 조용히 있어라, 아니 맞서 싸워라. "진짜" 친구를 위한 길을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날, 귓속말로 응원한다는 작은 속삭임 하나 밖에 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섞은 술 한잔을 모두 비웠다.

  • <위력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굴복하고 싶지 않지만 옳은 목소리를 내기 참 어려운 현실이다. -
(8.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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