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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현재 시각 새벽 두 시. 초인종이 울린다. 귀를 틀어막는다. 귓속에서 심장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띵-동 띵-동. 앞선 소리가 그치기도 전에 초인종 소리가 연거푸 울린다. 쿵, 쿵-, 쿵-쿵-. 심장소리가 거세진다. 아드레날린이 굶주린 들개처럼 혈관 속을 뛰어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이었던가. 어둠 속에서 휴대폰 불빛이 켜졌다가 어두워진다.
'부재중 전화 78건'
화면이 꺼지기 무섭게 다시 불빛이 들어온다. 휴대폰을 아예 엎어버린다. 이 전화기는 내 것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뒤집혀진 틈 사이로 쉴 새 없이 빛이 새어나왔다 꺼졌다 한다.
'개같은 새끼'
기억의 축이 몸속에서 희미한 소리를 내면서 삐걱거린다. 그것은 아주 생생한 소리로 다가온다. 쫘-악. 뺨이 부어오른다. 찰싹. 손바닥도 부풀어오른다. 손이 오르내리던 날, 바로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벌써 3주째 집에 불을 켜지 못했다. 어둠이 무섭진 않았으나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은 두려웠다. 낮에도 최대한 조용히 지냈다. 나도 죽어가고 집도 죽어가고 있었다.
집에 먹을 만한 게 남아있었나. 인스턴드 우동 하나를 집어든다. 시들어가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우동 포장지에는 생생生生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동이라는 음식에는 뭐랄까,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젓가락을 휘휘 저으며 흐릿해지는 생각들을 움켜잡는다. 둥근 쇠젓가락 사이로 면발 가닥이 빠져나간다. 더 놓치기 전에 후루룩 하고 급하게 입에 욱여넣는다.
'스토킹, 스토킹 기준, 스토킹처벌법, 스토킹 형량, 접근금지가처분신청'
검색창에 집어넣는 단어가 점점 길어진다. 검색어가 명확해질수록 검색결과는 복잡해진다. 문 밖도 못 나서는 신세에 놓인 이에게, 친절한 법적 절차는 배열이 명확하지 않은 사전과 비슷하다. 아무리 뒤적여봐도 시간만 낭비할 뿐 아무런 소득도 없다.
형광등도, 전등 스위치도, 전화기도, 초인종도, 집앞 골목도 삶에서 멀어진다. 현관까지 어둠이 파고들까봐 초초해진다. 잠시 어둠보다 더 어두운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내젓는다.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싶진 않다.
빈 종이에 약도를 그리고 살펴본다. 집앞을 나섰을 때 그 새끼를 마주치지 않을 경우의 수는 0.
'씨발'
종이도, 볼펜도, 소리 잃은 휴대폰도 집어던진다. 종이를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쫙쫙 찢어버린다. 그 조각들을 음울한 방구석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왠지 시간의 좌표축이 조금씩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집앞 골목, 초인종, 전화기, 전등 스위치, 형광등에 이어 시간까지 모조리 빼앗길까봐 겁이 난다.
질끈 눈을 감는다.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일부러 어두움을 참아낸다. 실패해도 괜찮다.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괜찮다. 정말로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자 묘하게도 마치 시간을 탈환한 것 같은 그리운 위화감을 나는 절실하게 느꼈다. 뭐라도 빼앗겨야 한다면 신문 지면 1면도 빼앗기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뜬다.
부재중 전화 따위,
개같은 새끼 따위,
스토커 그 새끼 따위,
씨발, 아무래도 괜찮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외투를 집어 단추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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