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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풍요와 편협]
리처드는 제주도로 떠났다. 사업은 배열이 명확하지 않은 사전과 비슷하다. 아무리 뒤적여봐도 시간만 낭비할 뿐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신용불량자. 그것 하나 달고 도망치듯 떠났다. 제주 생활을 하며 과거는 잊고 돈보단 사람을 탐구했다. 배운 사람, 학력이 아닌 인생을 배운 사람, 그들만 좇아다녔다. 인증만 하고 다시 잠에 들어버리는 미라클 모닝도, 벌금제라 기어코 버티고 있는 독서모임도 모두 자기계발 명목이다. 무엇보다 결이 맞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니 무언가 맞는 느낌. 나도 꽤나 힘들었는데, 왜 이렇게 각자의 사연이 깊은가. 더 배워야겠구나. 마음 수련은 득 밖에 없구나. 하나 둘 친구들도 포섭했다. 심도 깊은 대화는 역시 사람을 풍요롭게 만든다. 리처드는 그날 저녁, 새로운 명상 수업을 등록했다.
그로부터 10년, 리처드의 삶은 여전하다. 더 잔잔해졌을 뿐. 오전엔 차를 내려 마시고 점심엔 모임 사람들과 집에서 식사를 했다. 싱잉볼 소리와 함께 요가를 하며 내 호흡에 집중해보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다. 그때 토머스가 말했다.
“오후에 타지에서 친구가 온다는데, 같이 커피 한잔 할래?”
좋다고 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아니, 어떤 결을 갖고 있을까. 토머스가 소개시켜 준 사람이라면 분명 우리와 비슷하겠지. 새로운 친구 찰스가 도착했다.
리처드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찰스는 생각보다 시끄럽다. 딱 봐도 우리과는 아닌 듯 하다. 첫 만남인데, 좀 예의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와 토머스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찰스는 모르는 눈치다. 찰스는 나와 친해지고 싶은지 본인도 명상을 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칫. 몇 년이냐 했냐고 물었다. 고작 이틀. 이틀 해놓고 마음이 편했니 어렵니 하는 것이 웃겼지만 적당히 맞장구 쳐줬다. 재미 없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도 모르면서. 독서는 하는가? 아니, 인생을 아는가? 힘든 일이 많았다는데, 신용불량자가 되어본 적은 있는가? 가족과 생이별한 사람, 가난에 허덕여 소금으로 배를 채워본 사람, 아빠의 폭력에 유년기가 박살나버린 사람, 내 주변 사람의 고통은 이정도인데. 찰스는 나와 무척이나 친해지고 싶은 가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인간에 대해 탐구하고, 반성하고, 용서하고, 다시 배우고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경험했다나 뭐라나. 좀 묘한 표현이지만 마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악을 쓰며 변명하는 것 같은 느낌을 나는 끊임없이 느꼈다. 그래도 내가 뭐라고 사람을 평가하겠나. 그래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대화를 겉핥기 식으로 이어나갔다.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토머스가 물었다.
“오늘 재밌더라. 찰스가 다음 번에 또 커피 같이 마시고 싶다는데, 언제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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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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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풍요와 동시에 편협도 준다. 리처드가 “우리와 비슷하겠지.” 라는 생각의 첫단추를 끼웠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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