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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당신은 국가가 정치적으로 국민을 죽이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흉악범의 인권 따위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나도 그들을 경멸한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자. 사형제가 최신 유행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국제앰네스티 기록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국가 중 20개국에서만 사형이 집행됐다. 대부분은 중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에서 이뤄졌다. 의문이 드는 집행도 적지 않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뭘까. 민주주의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체제라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일수록 시민의 생명권을 중시한다? 이런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사형제가 때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국가 반역죄’라는 모호한 혐의로 처형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혁당 사건이 떠오른다. 그건 정권의 사법 살인이었다. 재심의 소는 사형 집행 후 30년이 지나서야 인정됐다.

물론 20세기 일들이 오늘날 다시 재현될 거라 확언할 수 없다. 민주화가 실현되고 독재는 타도됐다. 소련은 몰락했다. 하지만 사형제의 정치적 이용이 다른 방식으로 교묘하게 나타날 거란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나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다. 당신은 정치를 신뢰하는가. 권력자들의 말을 모두 믿는가.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올해 OECD가 국민이 자국 의회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한국이 꼴찌 수준으로 나타났다. 30개국 중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체코와 칠레 단 2개국뿐이었다. 정치판에 흔한 ‘권모술수’는 여러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사형제가 부활한다면 도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중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권력자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사형 집행을 주장하는 것. 범죄 억제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모략이 있는 것. 여러 상황이 떠오른다. 여기다 오판 가능성까지 더해지면 더 심각하다. 비극적이지만 오판 가능성은 인간이 운영하는 재판제도에 있어 숙명과도 같다. 사형에 대한 오판은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한다.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하는 국가가, 불신과 분열을 조장하는 체제로 전락할 수 있다.

결국 사형제는 권력의 도구로 남용될 위험성을 내포한다. 단순한 형벌의 문제가 아니다. 정의 실현을 명목으로 생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가장 극단적인 권력 남용이다. 그런 사회는 더 이상 정의롭거나 신뢰할 수 있는 국가라 말할 수 없다. 이제 질문을 바꾼다. 당신은 어떤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나는 국가가 정치적으로 국민을 죽이는 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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