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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 자신의 눈알을 뺄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를 통치한 함무라비왕이 기원 전 1750년께 반포한 현존 최고(最古)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의 문장이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하는 원칙을 명시한 법전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법전으로 유명하다.
사형제도에 대해 종일 생각하며 자료조사를 했다. 기사를 찾아 읽고 다큐를 보고 컨텐츠를 읽고나서 마음 속에 떠오른 문장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았다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는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이 문장이 2024년 11월 22일 오후 6시 25분의 내 생각이다. 이 생각은 언젠가 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순간 나는 사형제도가 존재해야하며 집형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있다.
어느 모임에서 주제에 맞춰 대사를 쓰고 연기를하는 역할극을 했던 적이 있다. 그 날의 주제가 '사형제도'였다. 그때 난 '살인자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역할극시작 전 사형제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을 때 난 '반대'쪽에 손을 들었다. 바로 역할 뽑기가 진행되었고 난 '피해자의 어머니'라고 적힌 쪽지를 뽑았다. 난감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차례가 돌아왔고 어떤 대사든 말해야 했다.
"아아아악..... (흐느낌).... 대체 왜.... 우리 아이를.... 왜.... 왜!!!!"
내가 말한 건 문장이 아니라 비명에 가까운 울부짖음이었다. 살해당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생각하자마자 난 살인자를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겪은 일이 아닌데도 그랬다. 사랑하는 이를 처참하게 잃은 어머니에게 이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내 손으로 정의를 구현하고 싶을 만큼 감정은 격렬했다.
그날 생전 처음 느껴본 그 감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사형제도에 대한 기사, 다큐, 드라마같은 걸 볼때마다 내내 그날의 감정이 생각난다. 잘못을 저지른 인간에 대한 자비심은 피해 당사자가 아닐때 만 가능해 보인다. 살해당한 사람이 돌아올 수 없을지라도 살인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유가족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확정된다는 것은 그 죄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우린 살인을 하면 사형을 받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1년 평균 300여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300여명의 살인자들 중 중형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의도적으로, 극도로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리고 여러명을 죽여도 사형을 판결을 받는 일은 드물다. 20명을 죽인 유영철, 14명을 살해한 정남규, 토막살인을 저지른 정유정등이 사형을 판결받았다. 뉴스로 보도되지 못한 잔혹한 범죄행위들을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관계자들은 알고 있다. 그런 걸 보고 듣고도 살인자에 대한 교화나 자비를 말할 수 있을까.
살인자들은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음으로 교화의 기회를 얻는다. 그들은 보통 일찍부터 우리가 불행이라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그런 조건들이 감형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사형이 집행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30년을 복역한 사형수들중 2024년에 1명, 2025년에 5명이 출소의 기회를 얻게된다. 하지만 그들이 살해한 사람들과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을 잃어서 인생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에게 국가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살해당한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고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날에 갇혀버린다.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용우 이사장은 "범죄자에게는 '미란다 원칙'을 이야기한다. 범인은 변호사를 살 권리가 있다 얘기하지만, 옆에 있는 피해자는 그냥 가버린다. 범죄자 인권만 있고 피해자 인권은 없다."고 말한다. 정재민 변호사는 자신의 책 '범죄사회'에서 사형제 존치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가치 있는 생명을 무참히 죽인 사람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의의 기본적인 요청입니다..... 지금이라도 사형을 집행해야 합니다. ... 우리나라 법에 엄연히 사형제도가 있고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하는데도 행정부가 이를 집행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정의에 반합니다. 또 유족에게 근거 없이 고통을 주고 사형에 찬성하는 국민 다수의 뜻에 반하며 법과 재판의 권위를 전체적으로 손상시킵니다. 흉악범죄를 억제할 수 있는 중요한 효과도 놓치는 것입니다.”
법이 정의, 인권을 앞세워 보호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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