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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여러분은 특별한 루틴이 있으세요?>
밥을 먹기 전에는 꼭 물부터 마신다든가. 아니면,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늘 블랙이라든가. 가방은 꼭 왼 손에 든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아, 저는 제 루틴은 말이에요. 글을 쓸 때 꼭 노트에 먼저 기록하는 편이에요. 노트가 없다면 빈 종이를 쓰고. 당장의 빈 종이도 없다면, 책의 여백을 찢어서라도 꼭 연필로 쓰는 편이죠.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사냐구요?
사실 타이핑이 편하긴 해요. 지우는 것도 쉽죠. 번질 걱정도 없고. 육체적인 동작도 훨씬 간결해요. 책상 같은 공간적 제약도 덜하죠. 데스크탑, 노트북이 불편할 때면 휴대폰으로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시간도 절약되지. 종이나 펜을 사는 것도 없으니 금전적으로도 한참 이득이에요. 좋아하는 펜을 고르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워요? 디자인이 좋아도, 필기할 때의 감촉도 중요한 거. 아시죠?
타이핑은 ‘번거로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그런데도 연필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체계적인 성격의 루틴>
여러분. 잠시 다른 얘기를 해볼게요. 저는 최근에 빵을 배워요. 같은 재료를 항상 똑같은 순서로 넣죠. 같은 무게를 계량하고. 같은 온도로 굽기 위해 온도계는 항상 두 개를 써요. 빵을 발효할 때는 다음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설거지를 하고. 굽기 전에는 오븐용 장갑을 미리 준비하죠.
이것은 '루틴'과 관련돼요. 미세한 틈도 허용하지 않죠. 그래야만 똑같은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높으니까요. 따라서, 루틴은 대개 전략적인 자세를 취해요. 항상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 체계적으로 움직이려 하죠. 때문에 잘 모르는 영역일수록 자신만의 루틴을 정하는 일은 꽤나 중요해요.
<게으른 성격의 습관>
그에 반해 '습관'은 '게으름뱅이'에 가깝습니다. 늦잠을 자는 것은 습관이고,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보는 것도 습관이죠. "내일부터 갓생산다."라는 말이 자꾸만 나오는 것도. 우리의 잘못된 습관으로부터 오는 자괴감과 우울감에서 비롯된 거라 짐작해요.
"다음에는 절대 과음 안 해야지."하면서 오늘의 소주 잔을 가득 채우고. "내일은 꼭 책 읽어야지."하면서도 '책 읽는' 브이로그를 보듯, 우리의 습관은 매순간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뇌는 사실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우리가 매순간 편하기를 바라요.
<그렇다면 좋은 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야만 할까요?>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루틴과 손을 맞잡고 협력하려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당최 전혀 다른 친구들을 붙여놓을 수 있을까 싶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바로, 작은 행동부터 ‘루틴화’ 시키는 훈련을 하는 것이죠.
<작은 루틴이 불러오는 습관>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글씨체'를 좋아하던 인간이었죠. 고교시절, 좋아하던 '역사' 선생님의 필체를 좋아했습니다. 휘날리는 필체가 '무협지'처럼 날렵하면서도, ‘브룩스 브라더스’풍의 단정함을 가졌거든요. 자/모음과 길이. 꺾는 각도. 힘을 주어 강조되는 굵기도 모자라, 운필법까지 그대로 베끼기 위해 고심합니다.
['ㄱ'을 쓸 때는 내려가는 획을 늘리고, 'ㄴ'을 쓸 때는 경사를 완만하게 해서 부드러이 다음 모음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모음의 꼬리는 길게 빼되, 종성이 있을 경우는 예외로 한다.]
선생님의 동작 하나 하나를 분할하고 조각냈어요. 그러다보니, 수업은 안 듣고. 역사 시간마다 글씨 연습만 주구장창 했죠. 아마 수업 잘 듣는 학생처럼 보였을거예요.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삐뚤한 제 글씨에도 나름의 혼이 실렸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재미있었어요. 미숙한 글씨를 더 깔끔하게 다듬기 위해, 같은 글자를 여러 번 반복해서 썼고 교과서를 필사하기도 하면서 말이에요.
어느 새 글씨의 모양을 잘 다듬고 싶었던 저의 ‘루틴’은 ‘습관’처럼 몸에 배었고, 언젠가부터는 자/모음의 세세한 획에 신경쓰지 않더라도 물 흐르듯 부드럽게 써내려갈 수 있었죠. 그리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라는 새로운 습관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말이에요.
글씨를 잘 쓰고 싶었던 작은 행동이 종이에 글을 쓰는 루틴을 만들었고, 그 루틴이 쭉 이어져 이젠 글쓰기 습관과도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습관은 몸에 배어도 여전히 어렵다>
물론, '습관은 몸에 배어도 여전히 어렵다'라는 주장도 충분히 납득이 가고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사실 루틴을 만드는 것은 쉽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생각보단 어렵지 않듯이요.
그러나, 설계된 루틴을 몇 달 동안 유지하며 ‘좋은 습관’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 겁니다. 아마 힘들겁니다. 습관이 잘 만들어진다고 해서 일이 쉬워지는 것은 또 아니니까요.
마라토너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매일같이 고강도 훈련을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달리는 일 자체가 편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예요.
하지만, ‘좋은 습관‘을 삶의 측면과 연관지어 본다면 분명 좋은 성취감이 따라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운동 후의 성취감은 ‘운동을 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리워드라는 점을 생각하면요.
게다가, 우리들이 매일 몸소 증명하잖아요?
아 글쓰기 싫다. 이렇게 쓰는거 맞나요~~ 크리스~~
(13.0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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