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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무조건 잘 되었으면 하는 사람

손님이 우르르 들이찬다. 창을 통해 바깥에서 훤히 보이는 책방의 내부. 지나가는 사람들이 책방을 살피는 게 눈에 걸린다. 보려고 보는 건 아닌데 보여서 가끔 아예 모른 척하기도 한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여기로 들어온다면 당신을 환대하겠지만, 들어오라고 환대하고 싶지 않다. 그건 당신이 선택해야 하니까. 책방에 사람이 아예 없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부담스러워서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 사람들이 너무 꽉 차 있으면 부대낄까봐 들어오지 않는다. 적당히 책방에 사람이 있을 때, 사람들은 조금의 망설임을 벗어두고 책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책방은 북적북적. 아주 오랜 경험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이 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는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적당히 나갈 각을 잡고 있던 사람들은 누구라도 먼저 문을 열고 나가 주기를 바란다. 눈치를 살피는 걸까. 눈치를 살펴주면 좋겠다. 여기는 책을 읽는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파는 서점이니까. 여기는 도서관이 아니다. 속으로 되뇌면서 나는 책방 안에 들어온,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사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은 사람들에게 적당한 책을 권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예 책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온 사람들도 보인다. 사진만 몇 장 찍고 휘리릭 나가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많진 않아도 없지도 않아서 어느 순간 책방에 들어오는 손님 모두에게 책방을 안내하는 말 전부를 건네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편하게 구경하세요.
그런데 당신은 좀 긴가민가했네. 엄청나게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이 공간 자체를 한껏 안아보려는 눈빛을 책방에 쏘아대니까. 정말 사진만 찍으려 들어왔나. 일본 소설이 꽂혀 있는 칸을 서성이던 당신은 꽤 오래 고민하고 한 권의 책을 들고 계산대로 오네. 계산해 드릴까요? 네.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고르셨네요. 조금 전에 손님도 히가시노 게이고 책을 사 가셨는데. 안 그래도 그 분도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고민하시던데, 이 책은 제가 찜해서 아마 그 책을 사셨을 거예요. 대화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차 한 잔을 주문한 뒤 책을 읽고 가도 되냐고 묻는 손님. 차갑게 드릴까요. 뜨겁게 드릴까요. 뭐가 더 맛있나요? 지금 날씨가 추우니까 따뜻하게 드시죠. 네, 좋아요. 말 하나하나에 깃든 조심스러운 다정함. 이건 분명 내가 손님에게 건네야 할 것인데, 되려 내가 받는 것 같아서 어쩐지 머쓱해진다. 차 한 잔을 건네려다 문득 오늘 오기 전에 들린 카페에서 받은 쿠키가 생각났다. 차와 같이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아서 함께 건네려는데, 당신도 나에게 포장된 과자 하나를 건네고. 참 이상하지. 그 뒤로도 대화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손님이 들어오면 잠시 침묵을 지키며 책을 읽던 당신은 다시 말을 꺼내고. 타지에서 왔다는 얘기까지 듣게 되네. 멀리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찻잔은 두시면 제가 치우겠습니다. 이제 서울로 시험을 치러 가야 한다는 당신은 대뜸 나에게 파이팅이라고 말하면서, 나도 파이팅이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떠나고 나는 남고. 정말 당신을 아예 모르지만, 그리고 이제 아예 만나지 못할 수도. 더 이상 접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막연하게 무조건 잘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긴 날이라 기뻤네.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은 훤하고. 창 안의 내가 보는 책방은 환하네.

(8.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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