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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를 타고 그 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어야 했다. 수연스님에 대한 글을 읽지 않았다면 난 굳이 예전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지 않았을거니까. '드디어 마지막 미션이다!'라는 설렘은 단 1분만에 눈물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글을 울면서 쓰게 될 줄 몰랐다. 모각글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인 오늘까지 하루도 빼지않고 뒤통수부터 갈기곤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나를 몰아간다. 멀찍이 밀어뒀던 것을 코앞으로 가져와 들이민다. 이제 직면해야 할 시간이라며 더이상은 도망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거다. 여러모로 얄짤없다.
8시에 미션을 읽는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미션 주제를 생각하고,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고, 다듬고, 읽고, 다시 읽고 , 고쳐쓰고 싶은 걸 참고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최종제출을 눌렀다. 그때는 최선이었던 글이 제출하고 나면 이게 뭔가 싶어 지우고 싶어진다. delete버튼을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다음 미션은 퇴고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생각하지만 매번 제출시간에 맞추기 바쁘다. 모각글은 그래서 내게 인생의 축소판같았다. 미션을 실행하고 마무리를 한후 돌아서면 아쉬움이 남아서 지우고 다시 하고 싶어지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딱 그렇다.
어떤 '의식'을 치루는것 처럼 미션을 시작하기전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쓰고 싶어?' 마지막 날이니까 특별히 더 진지한 마음으로 묻는다. '왜 쓰고 싶어?' 어제와 같은 대답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오늘은 특별히 하나 더 질문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잘 모르겠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어쩔수 없이 매일 뭐라도 써야하는 저주에 걸려 있는 느낌이다. 뭘 쓰고 싶은지 모른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다. 쓰고 싶은 게 있다. 하지만 쓸 수가 없다. 매일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상상을 하지만 결국 못쓴다. 그래서 난 쓰고 싶은 것을 등지고 쓰는 행위 속에 숨는다. 쓰고 싶은 것을 쓰지않는 방식으로 나를 속인다. 늘 그래왔듯 나만 속인다.
문득 수연스님같은 사람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한 사람이 생각났다. 그 한사람은 쓰고 싶은 것을 못써서 계속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못속여서 자신만 속이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그와 평생 함께 했지만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수연스님처럼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잘 먹이고 싶어한다. 난 그가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었으면 좋겠다. 소화를 걱정하지 않으면 좋겠고 자신을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쓰고 싶은 글을 쓸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라도 세상의 중심에 자신을 놓아두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감추는 걸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 피어나기를 바란다. 글이 그를 피어나게 해주면 좋겠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빛나는 그를 보고 싶다. 그때는 울보인 그가 슬픔 대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길 원한다.
돌아가시기전 류시화 시인과 함께 하던 어떤 날 법정스님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라' 라는 기도를 남겼다. 이뤄질수 없는 일이라서 기도다. 내가 아는 그는 같은 제목의 책을 사며 스님과 똑같은 기도를 했다. 어쩌면 그가 글을 쓰게 된 것은 기도의 응답일지도 모른다. 글은 그를 살게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게 할 것이다. 그는 결국 쓰고 싶은 걸 쓰면서 살아남을 것이다. 결말이 행복이든 불행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그는 글로 자신을 살렸듯 다른 사람도 살릴 것이다. 나는 엔딩을 알고있다. 내가 그의 글을 제일 먼저 읽는 사람이라서다.
링크를 타고 법정스님의 글을 읽는 바람에 엉엉 울면서 글을 썼지만 그래서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따라 쓸 수 있었다. 미션이 머리 속을 떠다니는 통에 매일 복잡했는데 오늘은 눈물이 날 살렸다. 개운하다.
익명이라는 것에 기대어 마음대로 여러 시도를 해볼수 있었다.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동료‘들의 글을 읽으며 감탄하고 다시 내 글을 읽으며 쪼그라드는 일을 반복했다. 같이 쓰다보니 잘 쓰고 싶어졌다. 도드라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다. 잘 쓰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다. 그래서 그 어느때보다 멋지게 쓰고 싶었다. 마음이 커질수록 글이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 곤란했다. 그래도 좋았다. 너무 너무 힘들었는데도 좋았다. 모각글을 만들어 준 크리스와 글쓰기에 진지한 동료분들께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언젠가 다시 글로 만나면 우린 글에서 나는 향기로 서로를 알아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꼭 왔으면 좋겠다.

(1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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